장재형(장다윗)목사가 강해한 요한복음 18장 12절에서 21절까지의 장면을 중심으로 묵상한 글인데 본문은 예수님을 잡아 심문하는 종교권력의 어두운 민낯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라는 표현이다. 이는 단순히 절차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당대에 존재했던 거짓된 종교권력의 근본적인 부패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산헤드린 공의회가 종교재판을 주관했으며, 그 의장은 현직 대제사장이 맡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결박해 붙잡은 자들이 가장 먼저 끌고 간 곳이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가 아닌, 그의 장인(丈人)인 안나스의 집이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심각한 문제를 시사한다.
안나스는 과거 A.D. 6년부터 15년까지 약 9년 정도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바 있었고, 이후 자신의 다섯 아들을 모두 대제사장 자리에 앉혔으며, 결국 사위인 가야바에게까지 그 권력을 세습시킨 악명 높은 인물이다. 본래 유대교의 전통적 제사장직은 종신직이었고, 그만큼 존경받으며 권위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유대를 지배하게 된 후, 대제사장직은 돈과 정치적 줄대기에 의해 좌우되는 세속적 권력이 되어버렸다. 로마는 자신들에게 협조적이고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될 만한 인물을 대제사장으로 세웠고, 안나스는 그러한 구조 속에서 막대한 금전을 로마에 바치며 제사장직을 잡고, 한편 성전 안에서는 장사와 환전으로 부를 축적하며 거대한 종교적 기득권을 형성했다.
당연히 이런 인물에게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은 눈엣가시였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이 하나님의 전(殿)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타하시며, 성전을 뒤엎고 정화하셨다. 복음서들 가운데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비둘기와 양, 소를 파는 자들의 상과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말씀하신 장면이 등장한다. 그 당시에 ‘성전 안에서 파는 제물만 검열을 무사 통과하도록 하고, 바깥에서 준비해온 제물을 무조건 불합격 처리하여 다시 성전에서 비싼 값에 사도록 하는 구조’가 만연했는데, 그 중심에 바로 이 대제사장 일가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안나스와 그를 추종하는 종교 권력자들은 이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고, 성전세나 환전에 대한 수익 또한 마찬가지의 구조로 거둬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안나스는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했지만, 정작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을 돈과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온갖 정치적 뒷거래로 로마와 결탁해 대제사장직을 세습하며 부와 명예를 지켜왔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며, 안나스는 이 도전자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종교적 폭정과 강압, 그리고 거짓된 법 적용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잡아내는 것, 그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였다.
그렇다면 왜 산헤드린이 아닌 안나스 개인의 집에서 예수님이 먼저 심문을 당했을까? 유대인의 종교재판은 율법상 밤에 열 수 없었으며, 공정한 재판이 되려면 반드시 성전 뜰이나 공적으로 마련된 장소에서 낮에 이루어져야 했다. 더불어 최소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고,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잡아온 이들은 어두운 밤에 은밀하게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 현직 대제사장이 아닌 과거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또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권한은 오직 로마 총독에게 있었으므로(유대인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다), 안나스는 일단 종교적 차원의 이단(異端) 정죄를 확정 지어 빌라도에게 넘기기만 하면 되었다. 어떻게든 예수님이 “율법을 거스르고, 성전을 헐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로마 황제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이 되려 한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워 형량을 무겁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배반자 유다였다. 그는 예수 공동체 안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발언들을 과장 혹은 왜곡해 안나스 측에 전달했다. 요한복음 13장 30절에서 유다는 주님께서 주신 떡을 받자마자 어둠으로 떠나갔다. 그가 “밤이더라”라는 말씀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일 뿐만 아니라, 영적·도덕적 어둠 속으로 그가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미 대제사장 측과 은 30냥에 계약하여 예수님을 넘겨줄 계획을 세운 상태였으며, 예수님께서 ‘헐라’고 말씀하신 성전, 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신 부분(실제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여러 차례 암시하셨다) 등을 안나스에게 제보함으로써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이처럼 안나스에게는 불법적인 심문을 행할만한 공식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사두개파 중심의 성전 경제와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기에, 산헤드린 전체의 움직임을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또 대제사장직을 세습시키면서 실제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조차 자신의 ‘얼굴마담’처럼 세워놓고 배후에서 종교정치적 결정을 좌지우지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내내 이러한 거짓되고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여러 종파들 사이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 증언하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율법의 본질로 돌이키게 하고자 하셨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고, 마침내 악명 높은 안나스가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바는, 종교와 권력이 결탁하면 얼마나 무서운 형태의 폭력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장재형목사는 복음서의 이 장면을 연구하며, 지도자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건성으로 붙들고 사실은 세상의 힘을 빌려 사람을 해치려 할 때,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거짓과 부패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사랑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안나스와 같은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오히려 죽이는 도구로 만들고, 백성들의 믿음을 수단화해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은 독사의 자식과 같은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거듭 말씀하신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종교적 지식을 갖고 있었을 뿐, 참된 영적 본질에서 멀어져 있었다.
우리가 살피는 요한복음 18장 19~21절에서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과 교훈에 대하여” 물은 것은, 그가 과연 어떠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꾀고 있기에 이렇게 세력이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유다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이 있다고 찔러 넣었을지 모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제사장들은 “네가 감히 우리 전통과 율법, 그리고 로마 권력에 도전하는 가르침을 폈느냐?”라고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여 이르셨다.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요 18:20). 예수님은 굳이 감출 것이 없었다.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집요한 음모를 꾸몄으나, 예수님은 진리 자체였기에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요 18:21)고 하시며, 증인과 증언을 통한 공정한 재판 절차를 도리어 되짚어주신다. 그러나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안나스와 그 일당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답을 하든 마음이 닫혀 있었고,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성전 장사와 기득권을 지켜줄 정치·종교적 합의를 유지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모습이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진정한 복음을 외치고, 교회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며 성전을 가꾸려고 하면, 이미 교권주의와 물질주의에 물든 일부 세력은 오히려 그를 이단이라 공격할 수 있다. 교권세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소위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정작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거부하는 역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역사를 예로 들며, 종교개혁의 시대 때도 중세 카톨릭 교권이 물질적·정치적 힘과 결탁하여 면죄부를 팔고, 교회 세속화가 심각해졌을 때, 루터가 “오직 성경”을 외치며 진리를 환기시키려 하자 거대한 교권의 벽에 부딪힌 사례를 상기시킨다. 예수님 시대의 안나스 세력이나, 중세 시대의 교권주의자나, 오늘날 여전히 존재하는 거짓된 지도자들이나, 본질은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권력과 이익을 좇고,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기보다는 매매의 장소로 만들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을 오히려 탄압하고 추방하려고 한다.
결국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종교재판이라는 명목의 불법 심문을 받으시고, 곧 이어 빌라도의 법정으로 이송된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지만, 실제로 이 모든 음모의 실질적 시작점은 바로 안나스의 집에서 이루어진‘배후 심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밤의 비밀 거래와 음모가 예수님을 가야바와 빌라도, 그리고 끝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로 몰아넣었다. 빌라도는 로마 권력의 대표였고, 가야바는 유대교 권력의 대표였으나, 이 양측 권력의 ‘진정한’ 조정자는 안나스였다.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와 달리 안나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고 기술한 것은 이 음모의 시작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자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야합하면 얼마든지 무고한 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며, 결국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나스는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성전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 성전은 돌과 건물, 돈과 권력으로 운영되는 종교 기관이었다. 예수님은“내가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으로 참된 성전이 ‘주님 자신’이며, 성령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임을 선언하셨다. 이 메시지가 안나스와 그 세력에겐 가장 큰 위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키고 누려온 기득권 체제 전부가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날에도 이런 안나스와 같은 거짓 지도자들의 양상이 재현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크리스천 공동체가 부흥하면서 조직화되고 제도적 권위가 커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물질적 이득이나 명예, 정치적 영향력을 탐하는 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겉으로는 교회나 성전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를 위한 종교 장사를 벌이게 된다. 이것이 누적되면 예수님 시대의 성전처럼, 결국 거룩이 사라지고 장사치의 소굴이 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어떤 시대에도 회개를 외치고 진리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음성을 세우신다. 그때마다 안나스 같은 거짓 권력이 그 목소리를 잠재우고 심지어 죽이려 할 수 있는데, 성도들은 오히려 진리의 음성을 분별해내야 하고, 담대히 복음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장재형목사는 역설한다.
결국 요한복음 18장 12~21절에 나타난 “먼저 안나스에게로 데리고 가니”라는 장면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부패한 종교지도자와 정치 권력이 결탁하여 예수님을 고난의 길로 몰아넣는 역사의 비참한 상징이다. 동시에 이 어두운 그림자를 통해 예수님께서 빛 되심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악의 최후 발악이 있었기에 주님의 구원사역이 오히려 빛나게 되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할 때, 안나스와 같은 인물이 혹시 우리의 공동체를 오염시키지 않는지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공정한 재판과 율법 준수, 그리고 성전의 본래 목적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한 시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더욱 붙들고, 회개와 거룩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장재형목사는 반복해서 설파한다.
Ⅱ. 베드로의 부인과 성령의 능력
이제 시선을 베드로에게로 돌려보자. 예수님께서는 결국 안나스의 집에 먼저 끌려가 불법 심문을 받으신 뒤, 공관복음서가 주로 보여주는 가야바와 산헤드린의 종교재판 과정을 거치신다. 그 와중에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예수님께서 체포되자 대부분의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요한복음 18장 15~16절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학자들 사이에서는 요한 혹은 유다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가 예수님을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갔다고 기록한다. 그나마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주님을 버려둘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무장을 한 군인들 앞에서도 칼을 뽑아 들고 저항하려 했으며, 예수님께서 결박당해 끌려가시는 모습을 뒤쫓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곧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한다. 요한복음 18장 17절에서 문지기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묻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이후 숯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베드로는 연이어 예수님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잡아뗀다. 공관복음서는 그때 닭이 울었다고 전하며,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한다(마 26:75, 막 14:72, 눅 22:62). 사랑하는 스승을, 그것도 가장 가까운 제자였던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부인해버린 이 사건은 기독교 신앙에서 한없이 큰 슬픔과 자책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장)라고 세 번 물으시고 다시금 사도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통해, 주님의 놀라운 용서와 사랑의 스토리로 완성된다.
왜 베드로는 그토록 담대했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순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을까? 이는 거대한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합작한 잔혹하고도 단호한 심판의 분위기, 그 앞에서 느끼는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안나스의 집뜰에서 군인들과 하속들이 예수님을 결박해 끌고 들어갔고, 그가 곧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 자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베드로가“나도 그의 제자다”라고 인정했다가는 자신 또한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을 수 있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특히 안나스라는 배후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는 로마의 군병들과도 협력하며 예수님을 잡아온 이들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무슨 힘이 있어 그 대세를 뒤집을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적인 두려움이, 그를 한순간에 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배반자 유다와 달리, 베드로는 적어도 그 뜰까진 따라왔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그는 끝까지 주님 곁을 지키고 싶었으나, 잔인한 현실 앞에서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부인 후에, 베드로는 자복하듯 통곡했다. 거기서 끝이었으면, 베드로는 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자로 남았겠지만, 주님의 부활 이후 베드로는 다시 회복되어 초대 교회의 기둥으로 선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했을 때,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 서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3000명이나 회심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과거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한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사도로 변화된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실제적이며 능력 있는지 강조한다. 베드로의 부인은 분명 인간적인 나약함과 두려움의 소산이지만, 그가 한없이 추락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 그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진정한 믿음의 용기로 재무장하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한 후,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설령 종교적 권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어떤 위협이 닥쳐올지라도 복음을 외치게 된다. 그 유명한 말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외치며, 박해에 굴복하지 않는 지도자로 거듭난다.
이것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배신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유다는 안나스에게 정보와 기회를 팔아버리고, 결국 “나는 죄 없는 피를 팔았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도 회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다의 회개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기 파멸로 치닫고 말았다. 반면 베드로는 심히 통곡함으로써 어떻게든 다시 주님께 돌아갈 수 있었고, 주님이 그를 찾아와 주도적으로 회복시켜주셨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의 본질’과 ‘성령의 회복 사역’을 강력히 강조한다. 인간의 불신과 배신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부활하신 주님의 용서와 성령의 회복 역사는 그를 다시 일으키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의 부인 사건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깨달음을 준다. 누구나 신앙의 담대함을 말하고 결단을 외칠 수 있으나, 현실의 압박 앞에서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베드로처럼 수제자라 불리던 자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한목소리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제거하자”라고 외치면, 그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성도가 위축되고, 어떤 이들은 베드로처럼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부인 후의 태도다. 베드로처럼 통곡하며 회개한다면, 주님께서는 이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시고, 그를 통해 복음의 큰 역사를 이루신다.
장재형목사는 현대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베드로의 회개와 회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교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핍박을 받을 때, 성도들은 때로 세상의 조롱과 적대 앞에서 움츠러들 수 있다. 혹은 자신이 그동안 지켜온 신앙 원칙을 순식간에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그때 우리가“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연약함으로 넘어졌습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손에 복음의 깃발을 쥐어주신다. 베드로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오순절의 복음 전도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회복되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베드로 행적을 보면, 그는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부활의 주를 만난 확신,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 때, 어떠한 종교적·정치적 협박도 그를 꺾지 못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그치라고 하느냐,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는 그의 선언은 신앙의 자유와 담대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전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장재형목사가 반복해서 설명하는‘성령의 실재성’이다. 성령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구체적으로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하시어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누리고 베드로처럼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을까? 첫째는 진솔한 회개다. 베드로는 스승을 부인한 후 통곡했다.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으나 동시에 얼마나 연약했는지를 인정한 것이다. 참회가 없이는 성령이 주시는 진정한 치유와 새출발이 어렵다. 둘째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세 번 받았다. 그것은 자기 기만이나 교만을 무너뜨리고, 오직 예수의 사랑과 용서로만 살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셋째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은 제자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배경 속에서 일어났다. 성령의 임재가 있으므로 제자들은 더는 숨어 지내지 않고, 공공연하게 복음을 외칠 수 있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현대 교회에 적용할 때, 우리도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 안에서 성령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에도 교회나 성도가 세상의 권력 구조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진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이익 집단이나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라면,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베드로처럼 일어나 복음을 변증하고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특히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부르시는 자리로 다시 나아가는 결단”을 중요시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타협을 요구하고, 거짓 권력은 위협으로 몰아가지만, 성령께서는 “감히 너희가 내 이름을 어떻게 해서든 담대히 전하라”고 도우신다.
결국 예수님께서 안나스의 집에서 불법 심문을 당하시고, 가야바와 빌라도로 이어지는 잔혹한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 달리시는 극적인 전개 한가운데, 베드로의 부인은 오히려 죄와 은혜의 대조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중요한 사건이 된다. 정치와 종교 권력의 결탁이라는 ‘최대 악의 시나리오’ 앞에서도,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회복은 결코 좌절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요한복음의 전체 맥락 속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다.
장재형목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실패하고 낙심한 이들이 있더라도, 결코 끝이 아님을 잊지 말라고 권면한다.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구한다면, 그 어떤 과거의 실수와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교회 안에 혹 “안나스 같은 세력”이 득세하여 진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압박하더라도,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용기를 구하는 성도는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교회의 참된 권위는 사람의 지위와 힘에서 오지 않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로 전하는 그 말씀의 능력에서 나온다. 이는 2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코 바뀌지 않는 복음의 진리다.
우리는 요한복음 18장 12~21절을 통해, 안나스라는 부패한 종교 권력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음모를 진행했는지, 그 배후에 있는 악의 기제를 분명히 볼 수 있다. 율법과 성전, 그리고 종교 재판이라는 거룩해 보이는 틀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죽이는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 그중에서도 베드로는 두려움에 휩싸여 주님을 부인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는 다시 회복되고, 복음 전도의 핵심 인물이 된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아이러니이자 소망의 메시지다. 가장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거짓 권력이 횡행할 때,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성령은 인간의 연약함을 덮고도 남을 능력으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빚어내신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강해하며, 교회사의 수많은 박해와 왜곡 속에서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무너진 자들이 다시 일어나 복음을 증거해온 것을 상기시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역사를 배움으로써,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을 붙들어야 한다. 과거 안나스와 같은 교권주의자들이, 혹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교회를 제압하려 한 사례는 부지기수였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숨겨 놓으신 사람들, 회개하고 돌아선 ‘베드로들’을 통해 교회는 다시금 살아났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어떠한 악한 환경이나 배신, 혹은 자기 실수에도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주님은 살아 계시고, 성령은 여전히 임재하신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지듯, 우리는 요한복음 18장에 담긴 검은 그림자 속에서 오히려 빛의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체포부터 심문,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과 이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는 부패한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어떻게 합심해 진리를 파괴하려 드는지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회복 능력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되지 않는다는 궁극적 소식을 전한다. 공포와 배신, 음모와 죄악이 난무하는 밤이었으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주님의 의와 은혜가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교회 안에 안나스가 잠입하더라도, 제자들이 때로는 베드로처럼 넘어질지라도,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대로, 이 본문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공동체를 점검해야 한다. 혹시 우리의 신앙이 기득권과 세속적 욕망에 휘둘리고 있지 않은지, 혹은 극심한 억압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자신도 모르게 안나스의 편에 서서 참된 복음을 외치는 이들을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혹 나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가 크더라도, 베드로처럼 회개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새날을 열어주신다는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8장의 심문 장면이 전해주는 교훈이자,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모든 신앙 공동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메시지다.
1. L’identité de ceux qui sont ressuscités avec Christ et la profondeur de la grâce
En nous penchant sur cette déclaration de Colossiens 3:1 –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 –, nous réalisons qu’un seul verset peut résumer l’identité spirituelle du croyant et l’immensité de la grâce. Dans son épître adressée à l’Église de Colosses, l’apôtre Paul signale dès le chapitre 2 l’influence du légalisme et de la philosophie grecque qui ébranle la communauté. Puis, à partir du chapitre 3, il exhorte les croyants :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en insistant sur la « vie nouvelle » qui caractérise ceux qui ont été sauvés en Christ. Lorsqu’il emploie l’expression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 Paul ne propose pas un simple slogan ou une devise, mais met en avant l’événement qui transforme radicalement l’existence de tout croyant.
Paul rappelle le thème de Galates 2:20 : « Je suis crucifié avec Christ » et souligne dans le même temps la quintessence du salut : « ressuscité avec Christ ». L’humanité, vouée à la mort à cause du péché, obtient la vie éternelle par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e Jésus-Christ. Ainsi, notre être tout entier est bouleversé. Pour le croyant, l’ancienne identité n’a plus cours ; il devient une créature nouvelle en Christ, déjà riche de ses bénédictions, un être qui a reçu la grâce. Quand Paul déclare « tous sont morts », ce n’est pas une simple formule : il affirme que la puissance de la croix a révolu l’ancienne nature humaine et l’a transformée au plus profond.
Que signifie concrètement l’affirmation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 ? L’une des vérités paradoxales qui y sont contenues est : « nous sommes peut-être pauvres, mais en réalité déjà riches ». Du point de vue du monde, la richesse se mesure à l’abondance financière, au prestige social ou à la renommée. Mais la véritable richesse en Christ consiste à être affranchi du péché et à recevoir la vie éternelle – c’est la valeur suprême. Dès lors, il devient possible de « s’appauvrir » volontairement, de se dépouiller du désir effréné de richesse ou de gloire terrestre, puisque nous jouissons déjà de cette abondance spirituelle. Il est donc crucial de comprendre que « devenir pauvre » n’est pas un appel au monachisme strict ni un encouragement à la mortification pure et dure. Cela signifie plutôt que, riches spirituellement, nous ne sommes plus obligés de plier le genou devant le matérialisme ou l’obsession de l’honneur mondain.
Cette « richesse spirituelle » trouve sa source dans la grâce. Ce n’est ni par notre mérite ni par nos capacités, mais uniquement par la croix de Jésus et la puissance de sa résurrection que nous la recevons ; elle nous est donnée pour que nous la vivions pleinement. Pourtant, notre mentalité peut encore se laisser influencer par la logique du monde : l’avidité de posséder et de conserver ce que l’on a acquis, la quête démesurée de réussite sociale ou professionnelle, ou l’esprit légaliste qui veut gagner son salut par ses propres mérites. Paul range toutes ces attitudes dans la catégorie des « choses de la terre », dont il exhorte les croyants à se détourner, précisément parce qu’ils « sont ressuscités avec Christ ».
Parmi les prédicateurs d’aujourd’hui qui s’efforcent de transmettre cet enseignement centré sur l’Évangile et le Christ,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souvent ceci : « Si, par Jésus-Christ, nous avons déjà reçu la vie éternelle et si l’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est une réalité, notre perspective et notre attitude de vie doivent être fondamentalement différentes ». Plutôt que de se laisser constamment happer par les valeurs du monde, il faut « rechercher les choses d’en haut » et vivre comme un être céleste. Ce n’est pas la vie d’une élite spirituelle minoritaire : tous les chrétiens sont appelés à cette identité.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est le fondement même de cette exhortation.
Un point notable est que cet enseignement ne préconise pas simplement un rejet abstrait des « choses de la terre », comme si l’on devait s’enfermer dans un monastère ou rejeter en bloc toute culture séculière. Au contraire, le croyant possède déjà « les choses d’en haut », ce qui lui confère une liberté et une sérénité pour vivre plus pleinement. Avec l’assurance de cette abondance spirituelle, les biens matériels ou les honneurs de ce monde perdent leur statut de critère absolu. Beaucoup envient l’aisance ou l’opulence extérieures, mais celui qui est « en Christ » et possède déjà tout peut servir le monde avec un cœur libre. Il peut tendre la main aux plus faibles, se sacrifier, choisir de se dépouiller : il est déjà cohéritier de l’héritage ultime. Ainsi, nous sommes « pauvres, mais nous rendons riches plusieurs », nous sommes « comme n’ayant rien, et nous possédons toutes choses » (2 Corinthiens 6:10). Nous pouvons réellement mener cette vie paradoxale.
L’expression « Comme nous avons déjà tout reçu, nous pouvons nous appauvrir » renvoie à la vie de Jésus-Christ lui-même. Bien qu’égal à Dieu, possédant toute la gloire céleste, Jésus s’est dépouillé pour prendre la condition de serviteur et s’est livré jusqu’à la mort sur la croix. Ce renoncement et ce sacrifice sont une invitation à suivre ses traces. Et ceux qui répondent à cet appel ne mènent pas une vie uniquement douloureuse : déjà participants à sa gloire, remplis d’une espérance certaine, ils peuvent avancer avec joie sur le chemin de l’abandon et du don de soi.
Lorsque Paul dit :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 il ne s’agit pas d’un simple énoncé doctrinal. Il exhorte à modeler notre vie quotidienne sur cette réalité ontologique : nous sommes déjà transformés, alors vivons en cohérence avec ce nouveau statut. Le croyant doit se souvenir en permanence : « J’étais mort avec Christ, maintenant je suis ressuscité et Christ vit en moi ». Voilà la grâce agissante qui nous pousse à nous détourner radicalement de tout ce qui incarne « les choses d’en bas » – l’impudicité, l’impureté, les passions, la convoitise. Nous confessons : « Je suis mort avec Christ, et Christ vit en moi », et c’est ce moteur spirituel qui nous anime.
Le pasteur David Jang, dans ses divers sermons et conférences, met aussi l’accent sur la dimension concrète de la vie nouvelle et de la grâce que nous possédons en Christ. Déclarer : « Nous sommes ressuscités avec Christ » signifie que nous ne sommes plus contraints de vivre sous la tyrannie du péché et de la mort, et que, dans tout ce que nous entreprenons, nous pouvons servir dans la joie, soutenus par l’espérance du Royaume de Dieu.
De plus, cette nouvelle façon de vivre fondée sur la grâce ne se cantonne pas à la sphère personnelle et intérieure ; elle porte du fruit tant au sein de l’Église qu’au cœur de la société, si nous nous laissons guider par la vérité et l’amour. Lorsque nous prenons vraiment conscience de « l’identité et de la grâce des ressuscités avec Christ », notre regard se tourne nécessairement vers « les choses d’en haut ». Il est donc logique que Paul poursuive avec cette injonction : « Cherchez donc les choses d’en haut ».
En résumé, l’affirmation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 proclame que nous sommes morts et ressuscités avec lui, bénéficiant ainsi d’une identité nouvelle et d’une nouvelle existence. La grâce qui est nôtre en Christ ne relève ni de nos œuvres ni de l’opulence de ce monde ; elle brise la puissance du péché en nous et nous convie à la vie éternelle. Saisir cette vérité nous libère pour renoncer sereinement aux convoitises terrestres et vivre dans la plénitude de la richesse spirituelle que Dieu seul peut offrir.
2.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 Les défis de la mondanité et la transition vers un mode spirituel
Lorsque Paul exhorte l’Église de Colosses : « 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Colossiens 3:1), il ne plaide pas pour un détachement illusoire qui consisterait à « ne regarder que le ciel ». Il enseigne plutôt qu’en vivant au milieu du monde, le croyant appartient déjà à Christ, et que son mode de pensée et son échelle de valeurs doivent s’en trouver transformés. On pourrait qualifier cela de « changement de mode ». Au lieu de continuer à raisonner selon « l’ancien mode », purement terrestre, nous devons adopter le « nouveau mode », celui qui regarde selon la perspective céleste.
Que signifie ce « nouveau mode » ? Dans Colossiens 2:8 et suivants, nous voyons que la philosophie grecque et la gnose exerçaient une influence néfaste sur l’Église, tandis que les exigences légales et ritualistes (mentionnées en 2:16-23, notamment concernant les fêtes, les débuts de mois, le sabbat, les règles alimentaires) constituaient un autre péril. Paul s’inquiète de voir les croyants ballottés entre deux menaces : d’un côté, l’héritage d’une pensée séculière, rationaliste ou gnose, et de l’autre, un légalisme religieux qui vide l’Évangile de sa substance. Même si ces deux courants semblent contradictoires, ils présentent le même danger : affaiblir la foi et dénaturer l’essence de l’Évangile.
Selon la mentalité imprégnée de philosophie grecque et de gnose,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relevant du « matériel », seraient considérées comme inférieures ; seuls un savoir spirituel ésotérique et la vénération des anges compteraient. Ces adeptes prétendaient qu’une élite, grâce à un « gnosis » particulier, pouvait atteindre le salut. C’est dans ce contexte que Paul met en garde : « Qu’aucun homme, sous prétexte d’humilité et de culte des anges, ne vous ravisse à son gré le prix de la course » (Colossiens 2:18). En d’autres termes, ceux qui nient la suffisance du Christ et veulent s’en remettre à d’autres intermédiaires ébranlent l’Église en s’attachant à un faux mysticisme ou à une pseudo-supériorité spirituelle.
Parallèlement, le légalisme avance que le salut ne se fonde pas sur la grâce de Christ, mais sur le respect scrupuleux de certains rites ou prescriptions. Dans l’épître aux Galates, Paul attaque fermement ceux qu’il appelle les « du parti de la circoncision », rappelant que la circoncision faite par la main de l’homme ne saurait justifier, et que seule la foi conduit à la justice. De même dans l’épître aux Colossiens, il incite l’Église à ne pas se soumettre à l’exigence de célébrer tel jour ou de suivre tel régime alimentaire pour être justifié devant Dieu. Il appelle ces rites « l’ombre des choses à venir », la réalité appartenant à « Christ » (Colossiens 2:17).
Ces deux types de défi – la « pensée mondaine et rationaliste » et le « légalisme rituel » – menaçaient donc la communauté colossienne. Face à cette situation, Paul martèle :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L’authentique foi ne saurait dépendre de la philosophie humaine ni de règles religieuses ; elle repose exclusivement sur l’Évangile de Jésus-Christ, c’est-à-dire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Chercher les choses d’en haut, c’est se tourner vers « le Christ assis à la droite de Dieu » (Colossiens 3:1). Le Christ, mort et ressuscité, monté aux cieux, détient la victoire parfaite. Les croyants, même si leur vie sur terre est parfois difficile, ne doivent jamais perdre de vue qu’ils sont unis au Seigneur victorieux.
Le pasteur David Jang transpose souvent cet enseignement de Paul dans le contexte actuel, soulignant « l’indispensable transition vers un mode spirituel ». Même si nous assistons à des cultes et recevons l’enseignement biblique, si nous laissons nos mentalités envahies par les valeurs et les habitudes du monde, nous continuerons à accorder la priorité aux « choses de la terre ». Or la Parole déclare clairement : « Affectionnez-vous aux choses d’en haut, et non à celles qui sont sur la terre » (Colossiens 3:2). Ici, le verbe grec traduit par « affectionnez-vous » ou « pensez à » inclut l’idée de centrer son intérêt et son attachement : qu’est-ce qui retient le plus notre attention ? Si l’essentiel de nos pensées et de notre énergie est orienté vers l’ambition, la possession, la reconnaissance humaine, alors nous demeurons prisonniers du « mode terrestre ».
Évidemment, il ne s’agit pas de prôner un désengagement de la réalité. Paul lui-même gagnait sa vie en fabriquant des tentes et ne s’est pas retiré de la société. Néanmoins, au milieu de ses activités séculières, sa préoccupation première demeurait la prédication de l’Évangile et la gloire de Dieu. Lorsqu’il exhorte à « ne pas s’affectionner aux choses de la terre », il ne nous dit pas de fuir nos responsabilités quotidiennes, mais de rappeler sans cesse que notre véritable espérance n’est pas dans ce monde, mais dans « les choses d’en haut ».
Concrètement,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signifie donc convertir l’ensemble de notre vie aux valeurs du Royaume de Dieu. Les valeurs prônées par Jésus – l’amour, le pardon, le service, l’humilité, la joie, la paix, le partage et le sacrifice – résument l’éthique du Royaume. Paul y fait souvent référence dans toutes ses lettres. Si nous sommes unis à Christ, nous devons aussi nous conformer à sa manière de voir. Vivre la foi, ce n’est pas simplement fêter Pâques un jour par an ou se réjouir à Noël, c’est « vivre avec Christ » au quotidien.
Paul explique la raison de ce repositionnement dans Colossiens 3:3 : « Car vous êtes morts, et votre vie est cachée avec Christ en Dieu ». L’ancienne nature est déjà morte, et notre vie véritable est désormais cachée en Dieu. L’expression « cachée » évoque la protection, la sécurité, mais aussi la pleine révélation future. Même si nous ne paraissons pas jouir d’un grand succès ici-bas, notre vie est gardée en Dieu, et elle sera pleinement manifestée au dernier jour, lors de la venue de Jésus. Ainsi,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n’est pas un rejet pur et simple de la vie présente, mais une invitation à goûter déjà notre héritage céleste.
Cet enseignement demeure profondément actuel. La société moderne valorise la réussite visible, la richesse, le statut social. Les réseaux sociaux exacerbent l’auto-promotion, et l’argent tend à devenir l’aune de toute chose. Malheureusement, l’Église, elle aussi, peut se laisser infiltrer par cette mentalité et basculer vers un légalisme qui amalgame la soif de réussite à l’idée de « bénédiction ». L’Évangile est alors dénaturé en « croire en Jésus pour être plus fortuné ou mieux considéré ». Pourtant, Paul nous avertit qu’aucune philosophie terrestre ni aucun rituel légaliste ne peuvent remplacer Christ.
Ainsi,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Les défis de la mondanité et la transition vers un mode spirituel » est un appel à l’examen de conscience pour tout croyant. Le dimanche ou durant une étude biblique, nous proclamons « les choses d’en haut », mais, confrontés à la réalité, nous demeurons souvent soumis aux convoitises de la terre. Pour nous sortir de cette contradiction, Paul nous lance son exhortation solennelle :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Ce n’est pas un conseil facultatif, mais un ordre, une voie à laquelle tout croyant est convié, afin de ne pas sombrer ni dans la mondanité ni dans le légalisme, mais de marcher dans la puissance de l’Évangile.
Cette transition se réalise également grâce à l’Église. La communauté ecclésiale fournit un contexte où la Parole de vérité et la pratique de l’amour s’entremêlent pour nous aider à vivre concrètement « les choses d’en haut ». Le pasteur David Jang, comme bien d’autres, encourage cette conversion au « mode spirituel » grâce au culte, à la prédication, à la communion fraternelle, et au service. Mais, in fine, c’est chaque croyant, sous l’impulsion de l’Esprit, qui doit se décider librement à ce basculement. « Si donc vous êtes ressuscités avec Christ,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 nous sommes invités à ancrer nos regards et nos priorités dans la vision céleste, jour après jour.
En résumé, face au double danger du rationalisme mondain et du légalisme religieux, Paul oppose l’exhortation : « Re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Il met ainsi en évidence la nécessité d’un changement en profondeur, d’un véritable « mode spirituel ». Nous vivons sur cette terre, mais notre centre et notre but ultime sont dans le ciel. C’est cette attitude paradoxale qui caractérise « l’homme ressuscité avec Christ ».
3. Morts et ressuscités – L’espérance de la gloire et la mise en pratique de la vie
Dans Colossiens 3:3-4, Paul déclare que la vie du croyant est « cachée avec Christ en Dieu », puis ajoute : « Quand Christ, votre vie, paraîtra, alors vous paraîtrez aussi avec lui dans la gloire ». Ce texte dévoile la perspective ultime du croyant : la gloire à venir et l’achèvement de la résurrection. Paul développe la doctrine de la résurrection en détail dans 1 Corinthiens 15, et il y fait écho dans l’épître aux Colossiens : « morts et ressuscités », nous sommes porteurs d’une certitude qui nous soutient au quotidien.
Dire que le croyant est « mort » ne signifie pas qu’il se soit simplement amélioré moralement. C’est une rupture totale. Dans l’Ancien Testament, l’animal offert en sacrifice devait être mis à mort. De même, notre « vieil homme » est crucifié avec Christ et n’est plus soumis à la tyrannie du péché. Ainsi, être « ressuscité avec Christ » atteste que nous sommes libérés de l’emprise du péché et de la mort et que nous appartenons désormais entièrement à Dieu. Nous poursuivons notre existence au milieu du monde, mais notre essence profonde est déjà « cachée avec Christ en Dieu ».
Lors des funérailles, on entend parfois un cantique proclamant : « Sa mort est ma résurrection ». Cela rappelle que, pour les croyants, l’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change la manière d’envisager la mort. Alors que le monde voit dans la mort la fin ultime, les funérailles chrétiennes conservent une tonalité d’espérance, car nous affirmons que la mort n’a pas le dernier mot. C’est le privilège de ceux qui possèdent la vie éternelle. Comme Jésus l’a dit : « Je suis la résurrection et la vie. Celui qui croit en moi vivra, quand même il serait mort ; et quiconque vit et croit en moi ne mourra jamais » (Jean 11:25-26). Ainsi, même en traversant la mort corporelle, le croyant demeure uni à la vie éternell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ouvent dans ses prédications sur la dimension concrète de cette foi en la résurrection. Ce n’est pas un simple réconfort psychologique ou un vague optimisme : « La résurrection du Christ garantit la nôtre ». La foi en la résurrection n’est pas seulement tournée vers l’avenir ; elle agit déjà dans notre présent. Celui qui sait que cette vie terrestre n’est pas la fin peut assumer des choix plus courageux et libres pour plaire à Dieu. Même si cela implique des pertes ou des sacrifices selon la logique terrestre, nous pouvons persévérer en pensant à la récompense et à la gloire éternelles.
Dès lors, comment se traduit au quotidien la vie de celui qui est « mort et ressuscité » ? Paul fournit des directives éthiques dans la suite de Colossiens 3 :5 et suivants : « Faites donc mourir ce qui, dans vos membres, est terrestre : l’impudicité, l’impureté, les passions, les mauvais désirs et la cupidité, qui est une idolâtrie » (3:5). Puisque nous avons choisi « les choses d’en haut », il s’impose de renoncer aux « choses de la terre ». La personne régénérée ne vit plus selon ses convoitises et ses penchants égoïstes ; elle adopte la vision de l’éternité et de la vie nouvelle qui l’anime.
Paul qualifie la cupidité d’idolâtrie, montrant que l’amour de l’argent ou des biens matériels est une forme de culte rendu à un faux dieu. Dans notre monde actuel, les idoles ne sont plus forcément des statues de pierre ou de bois ; tout ce que l’on élève au rang de dieu, en reléguant Dieu lui-même au second plan, est une idole. Le croyant, ressuscité avec Christ, doit rompre avec ces formes modernes d’idolâtrie.
Pour cela, une vigilance spirituelle constante est nécessaire. Même si nous connaissons l’Évangile, même si nous sommes fidèles à l’Église, les tentations nous guettent continuellement. Que ce soit sous forme de légalisme ou de séductions du monde, nous sommes poussés à quitter l’essentiel de la foi. Dans ces moments, la conscience que « je suis déjà mort et ressuscité avec Christ » nous recentre. Nous ne sommes plus esclaves de notre ancienne vie, mais appelés à cheminer dans la nouveauté. Cette certitude nous incite à abandonner l’iniquité et à suivre la voie du Seigneur.
Par ailleurs, en Colossiens 3:4, Paul projette le croyant vers l’« ultime achèvement » : « Quand Christ, votre vie, paraîtra, alors vous paraîtrez aussi avec lui dans la gloire ». Les souffrances et l’imperfection présentes ne sont pas la fin de l’histoire. Le croyant participe déjà à la gloire céleste, laquelle sera pleinement révélée à la fin. La foi en la résurrection ne consiste pas à nier la souffrance, mais à la replacer dans la perspective d’un dessein bienveillant de Dieu. Elle nous rend capables de traverser l’épreuve sans désespoir.
Tout au long de l’histoire de l’Église, de nombreux croyants ont parcouru la route difficile du martyre, de la persécution ou de la pauvreté extrême. Qu’est-ce qui les a soutenus ? C’est précisément la certitude de la résurrection, l’union à la vie éternelle. Une telle force ne vient pas d’eux-mêmes : elle provient exclusivement de la grâce de Jésus-Christ et de la puissance de l’Esprit. C’est pourquoi, même au milieu des tempêtes de la vie, ils ont pu garder la joie et le courage.
Ainsi, celui qui possède la « vie de ressuscité » regarde avec espérance le retour du Christ et s’emploie avec sérieux aux tâches d’ici-bas. Rempli d’humilité, d’amour et de service, il s’implique auprès de ses semblables, tout en s’engageant activement dans la mission.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à maintes reprises que nous sommes appelés à faire fructifier le Royaume de Dieu sur cette terre en proclamant l’Évangile et en honorant Dieu par notre vie. Notre présence au monde est un acte de culte, de charité, de vérité ; en retour, Dieu se sert de nous pour manifester son règne et sa bonté.
Le fait que Jésus soit « assis à la droite de Dieu », dans la gloire, marque la souveraineté et l’autorité suprêmes du Christ. L’union du croyant avec ce Roi victorieux l’invite à prendre part au triomphe final. Voilà pourquoi la souffrance et les efforts fournis pour l’Évangile ne sont pas vains : le Seigneur, en son temps, récompensera et achèvera toute chose dans sa justice et sa miséricorde.
En définitive, « Morts et ressuscités – L’espérance de la gloire et la mise en pratique de la vie » implique de considérer que notre destin est la gloire à venir et d’y conformer notre quotidien. Étant déjà morts et ressuscités avec Christ, nous ne sommes plus otages des convoitises de ce monde ni de notre péché. Notre vocation est de nous débarrasser de l’impudicité, de l’avidité, des mauvaises passions, et de revêtir la « nature de Christ » faite d’amour, de compassion, d’humilité, de douceur, de patience, de pardon et de réconciliation. C’est là la pratique concrète de la résurrection qui anticipe le Royaume à venir.
Nous n’avançons pas dans cette voie par nos seules forces ou par austérité volontaire. Puisque, grâce à la mort et à la résurrection du Christ, nous avons déjà reçu la vraie abondance, nous lui obéissons en nous appuyant sur sa grâce. Quand quelqu’un s’écrie : « J’ai reçu la vie éternelle, le salut, la vérité et Christ est mon bien suprême », comment pourrait-il s’attacher aux futilités de ce monde ? Cette grâce nous procure la liberté intérieure qui nous fait dépasser les valeurs terrestres.
Même aux funérailles de nos frères et sœurs, nous pouvons chanter l’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Si les obsèques sont généralement marquées par le deuil et la séparation, la liturgie chrétienne y introduit une note de victoire et de consolation, reflétant déjà la réalité de la vie éternelle. « Celui qui croit en moi ne mourra jamais » : si cette promesse retentit lors d’un dernier adieu, la cérémonie prend alors la forme d’un hommage joyeux à la gloire divine, et non d’un désespoir total.
De même, dans la vie de l’Église et dans le ministère pastoral, nous faisons sans cesse l’expérience de la puissance de cette vie « morte et ressuscitée ». En soutenant les membres faibles, en relevant les cœurs découragés, en annonçant l’Évangile au monde, la foi en la résurrection manifeste son efficacité. Le pasteur David Jang, comme d’autres serviteurs de Dieu, aide la communauté à s’approprier en profondeur cette réalité, non pas comme un simple enseignement intellectuel, mais comme une puissance tangible dans la vie et la mort. C’est la transmission de la vitalité de l’Évangile au cœur même de l’existence.
Ainsi, même si nous traversons la richesse ou la pauvreté, la réussite ou l’échec, la joie ou la tristesse, la foi en la résurrection nous assure une identité inébranlable. Le monde connaît mille remous et épreuves, mais la foi dans le Christ ressuscité est l’ancre de l’âme, solidement fixée. L’Église aussi se dresse sur ce roc. Et lorsque le Seigneur reviendra dans la gloire, nous aurons part, nous aussi, à cette gloire. Voilà la promesse qui soutient notre marche quotidienne.
Tel est le message central de Paul : « Vous êtes morts et ressuscités avec Christ ». Nous ne sommes plus les esclaves du péché ni de la Loi, ni prisonniers des idéologies terrestres. Par la grâce de Jésus-Christ et la force de la résurrection, nous voici libres pour vivre en « cherchant les choses d’en haut ». Sur ce chemin, nous nous appliquons à respecter et à incarner une éthique qui reflète le Royaume de Dieu et anticipe la gloire éternelle. Tel est le pouvoir de l’Évangile selon Colossiens 3 : tout est renouvelé pour le croyant, qui se voit offrir une identité nouvelle et une espérance impérissable.
C’est dans cette dynamique que le pasteur David Jang et de nombreux autres pasteurs proclament et enseignent le message de l’Évangile, invitant l’Église à mettre en pratique cette « vie morte et ressuscitée ». Ainsi, nous retrouvons le fil conducteur des trois parties développées plus haut :
L’identité spirituelle et la grâce reçue par ceux qui sont ressuscités avec Christ,
« Cherchez les choses d’en haut » : surmonter le défi de la mondanité et du légalisme pour adopter le « mode spirituel »,
La réalité de la vie « morte et ressuscitée » : l’espérance de la gloire et la mise en œuvre concrète dans l’existence quotidienne.
Ces trois axes sont indissociables et constituent le cœur du message de Colossiens 3. Le croyant est régénéré et revêtu de l’homme nouveau, ce qui l’ouvre sur la vie éternelle et l’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Fort de cette foi, il témoigne du Royaume de Dieu dans ce monde et s’emploie à ressembler toujours plus au Christ. En somme, le dénominateur commun qui traverse ces trois chapitres de réflexion est « la puissance de l’Évangile » : c’est en Christ, et par Christ, que toute chose devient nouvelle, depuis notre identité jusqu’à notre espérance.
1. The Identity and Grace of Those Who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When we examine the statement in Colossians 3:1, “Therefore, if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we realize that this single verse encapsulates both the identity of faith and the depth of grace. In his letter to the Colossian church, the Apostle Paul points out the church’s shaken state due to legalistic claims and the influence of Greek philosophy, especially from chapter 2 onward. Yet in chapter 3, he begins in earnest with the exhortation,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emphasizing the “new life” of those who are saved in Christ. The phrase that Paul uses to initiate this new life—“Therefore, if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is not merely a slogan or motto, but an event that transforms the believer’s entire existence.
Paul reminds his readers of the theme “crucified with Christ” (Galatians 2:20) and simultaneously proclaims the essence of salvation: “made alive with Christ.” He declares that humanity, once doomed to die because of sin, has obtained eternal life through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becoming an entirely different being. For the believer, the old identity no longer applies. Only in Christ are we reborn, already possessing abundance, and living as those who have received grace. When Paul says, “They have all died,” it is no mere formal declaration but points to an actual transformation—the power of the cross event completely overturning our very nature.
What, specifically, does the statement “if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mean? It reveals the paradoxical truth that one may appear poor yet, in fact, be already rich. From a worldly perspective, wealth is measured by economic affluence, social standing, and fame. However, wealth in Christ is the highest value enjoyed by those set free from sin and promised eternal life. Therefore, one can have the leisure to humble oneself and become poor—without chasing worldly wealth or status—because one is already based on a spiritual richness in Christ. Hence, we must understand that the call to “become poor” does not suggest asceticism or self-mortification; rather, it signifies that we, who are already spiritually abundant, no longer need to submit to material things or worldly honors.
This “spiritual abundance” springs from grace. It is given not through any human merit or capability, but solely through the power of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Consequently, we can fully enjoy this abundance. Even so, worldly ways of thinking may still reside within us—the desire to cling tightly once we secure a position, an excessive pursuit of worldly success, or a tendency toward legalistic thinking that focuses on our own works. Paul calls these attitudes “the things on earth.” If we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we must cast off such old ways of thinking.
Among modern pastors who strive to preach and teach these essential truths of the gospel and Christ-centered faith,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underscores that “if we have indeed gained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and if the hope of the resurrection has become a reality, then our attitude and outlook on life must change fundamentally.” Rather than being swayed by worldly values, he teaches that we should seek the things above and live in a manner befitting those who belong to heaven. This is not a lifestyle reserved for only a select few; it is the identity that all Christians should enjoy. “Therefore, if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seek the things above” (Colossians 3:1) marks the starting point of this emphasis.
Notably, this teaching does not imply withdrawing to a monastery or outright rejecting secular culture in order to keep earthly things at bay, but instead encourages believers to enjoy an even fuller life through the freedom and leisure of those who already possess “the things above.” When one’s life is grounded in spiritual abundance, material possessions or worldly honor do not become absolute measures. People often envy the outward abundance of wealth, yet, in fact, believers in Christ who already possess everything can use this freedom to serve the world. They can reach out to the weak, gladly give themselves up, and voluntarily become poor—because they are ultimately heirs of everything. We become “poor, yet making many rich;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everything” (cf. 2 Corinthians 6:10), able to actually live out this paradox in our daily existence.
The paradoxical statement, “We can become poor because we have already received everything,” is closely tied to the life of Jesus Christ. Although He was originally equal with God and possessed the glory of heaven, He emptied Himself by taking the form of a servant and endured death on a cross. This self-emptying and sacrifice of Christ also serves as His invitation for believers to follow. Yet those who respond to this invitation do not live a life of only suffering; rather, they participate in His glory and walk the path of devotion with a sure hope and joy.
When Paul says, “If,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he does not intend this to remain a mere doctrinal statement. Because our everyday life has already changed, and we have undergone an ontological shift, we must act and live accordingly. Believers must constantly be aware of their identity as “new people who have died with Christ and have been raised with Him.” This consciousness enables them to decisively cast aside “earthly things,” such as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and greed. In confessional terms, “I died with Christ, and now Christ lives in me”—this experience of grace becomes our driving force.
Pastor David Jang, through various sermons and lectures, also emphasizes how astonishing the new life and grace in Christ truly are, and how they practically apply to daily life. The declaration that we have already “been raised with Christ” means that we no longer have to live enslaved to the power of sin and death; it also grants us the assurance that any work or ministry we undertake can be carried out joyfully in the hope of God’s kingdom.
Moreover, this new lifestyle grounded in grace does not pertain only to one’s inward transformation. As we live in grace and truth within the church community and across society, we bear fruit that pleases God. When we grasp the “identity and grace of those who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our perspective naturally shifts toward “the things above.” In this context, Paul’s subsequent exhortation,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follows quite logically.
In summary, “If,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declares that, as those who died and have been raised, we have received a new being and a new identity. The grace found in Christ is different from legalistic works or worldly wealth; it shatters the power of sin in us and invites us into eternal life. By laying hold of this truth, we can freely relinquish worldly desires and ultimately enjoy the spiritual abundance that only God provides.
2.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 Worldly Challenges and Spiritual Mode Switching
When Paul exhorts the Colossian church to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Colossians 3:1), he is not suggesting that believers should merely gaze up at heaven in some unrealistic manner. Rather, he teaches that, although we live in the midst of this world, our core identity is already grounded in Christ, so our way of thinking and value system must change accordingly. We might call this a kind of “mode switch.” In our faith life, we should not maintain our old, worldly mindsets (“the old mode”), but instead shift into a “new mode” of thinking from a heavenly perspective.
What exactly is this “new mode” that Paul mentions? From Colossians 2:8 onward, we see that Greek philosophy and Gnostic ideas had entered the church, unsettling the believers. Furthermore, legalistic demands—particularly those related to festivals, new moons, Sabbaths, and dietary regulations—mentioned in Colossians 2:16–23 posed another threat. Paul worries that the Colossian church is being shaken by two different challenges: the secular, rationalistic challenge grounded in Greek philosophy, and a form of legalistic, ritual-based faith. Although these two influences seem to be opposites, they share a common danger in that both obscure the essence of the gospel.
Those under the influence of Gnosticism, rooted in Greek philosophy, belittled the concrete events of Christ’s cross and resurrection as mere “inferior, fleshly affairs,” while claiming to pursue only what is “spiritual.” At times, they emphasized special revelations or the worship of angels, bringing confusion into the church. They asserted that salvation could be attained solely by acquiring a secret knowledge—“gnosis”—available only to a select few. This is why Paul warns, “Let no one disqualify you, insisting on asceticism and worship of angels” (Colossians 2:18). In other words, those who taught that Christ alone was insufficient had fallen into the error of not holding fast to Christ, the Head of the church, letting themselves be led astray by a false sense of spiritual superiority and mysticism.
On the other hand, the second challenge—legalism—locates the basis of salvation not in the grace of Christ but in the observance of certain rituals and rules. Paul confronted this teaching in Galatians as well, referring to these teachers as the “circumcision party,” stating that righteousness is attained not through outward, human circumcision but through faith in the gospel. Likewise, in Colossians, he warns the church not to accept those who argue that one can only be justified by observing festivals, new moons, and Sabbaths. He describes these practices as “a shadow of the things to come,” insisting that the substance belongs to Christ (Colossians 2:17).
Ultimately, these two challenges—“secular rationalism” on the one hand and “legalistic ritualism” on the other—were unsettling the church. Against this backdrop, Paul strongly urges believers to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This is because true faith is not enslaved by philosophy, knowledge, or religious customs; it is grounded solely in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power of the cross and resurrection. To seek what is above means to fix our eyes on “Christ seated at the right hand of God” (Colossians 3:1). Jesus, seated at God’s right hand, has already conquered sin and death through His resurrection and ascension, achieving a perfect victory. Therefore, no matter how difficult or painful life on earth may be, believers must never forget that they are inseparably connected to the victorious Lord.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Paul’s teaching in a way that churches and believers today can apply in real life, stressing over and over that we must “switch to a spiritual mode.” Even if we attend church and study the Bible, if our mindset remains trapped in worldly values and habits, we will inevitably give priority to “the things on earth” rather than “the things that are above.” However, Scripture clearly commands: “Set your minds on things that are above, not on things that are on earth” (Colossians 3:2). The word “set your minds on” here implies more than just mental cognition; it concerns where our focus and attachment lie. In other words, if our everyday concerns revolve only around worldly success, possessions, and fame, then we remain stuck in the “earthly mode.”
Certainly, Paul is not advocating that we all flee worldly affairs. In his letters, Paul never suggests ignoring one’s daily responsibilities. Paul himself was a tentmaker, earning a living while staying firmly engaged in the world. Yet his top priority was always to proclaim the gospel and honor God wherever he went. So, “do not set your minds on earthly things” does not mean to be irresponsible toward the world, but rather to remember that our ultimate hope lies in “the things that are above,” not in the transient values of this world.
Concretely, the exhortation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calls for us to structure our entire lives according to the values of God’s kingdom. The values of the kingdom, as proclaimed by Jesus, can be summarized by the forgiveness of sins, love, service, humility, joy, peace, sharing, and sacrifice. Paul repeats these themes in Colossians and throughout his other letters. If we have been united with Christ, our value system must become more and more like Jesus’s. After all, the Christian life is not a once-a-year celebration on Easter or a seasonal observance at Christmas, but a daily journey of “living together with Christ.”
In Colossians 3:3, Paul explains why we should make this “mode switch”: “For you have died, and your life is hidden with Christ in God.” The old self has already died, and the true life of the believer is no longer rooted in this world but “hidden with Christ in God.” The phrase “hidden with Christ” signifies preservation, safety, and ultimate revelation. Even if, for now, we do not possess visible worldly wealth, the genuine life of the believer is safe in God’s arms and will be fully revealed at the end of the age or the return of Christ. Thus, the command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should not be interpreted as a denial of earthly existence, but rather as an invitation to look daily to the heavenly inheritance that is already ours.
Paul’s teaching remains a serious challenge for us today. Modern society idolizes visible achievements, possessions, and social status. We see it everywhere—people endlessly promoting themselves on social media, chasing material success as the one true measure. Sadly, the church is not immune to these influences. Sometimes, worldly values seep into the church and merge with legalistic standards, diluting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 phrase “Believe in Jesus and you will be blessed” can devolve into a misunderstanding that Christianity is merely a faster route to worldly success. But Paul emphasizes that neither legalism nor secular philosophy is of any profit if they draw us away from a Christ-centered gospel.
Hence, the idea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Worldly Challenges and Spiritual Mode Switching” vividly illustrates what believers must examine within themselves. We may speak of “the things above” on Sundays or in Bible studies, yet still get ensnared by “the things on earth” in everyday life. To overcome such contradiction, Paul proclaims, “If then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This is not merely well-meant advice but a command and an invitation that every Christian is called to obey. We are told to switch our hearts and minds to the “spiritual mode,” powered by the gospel that transcends both worldly desire and legalistic burdens.
This transformation also becomes concrete through the church. The church community is a setting where believers can learn and share the gospel’s values and put them into practice. Through worship, preaching, fellowship, and service, pastors like David Jang help believers integrate “the things above” into their daily lives. Ultimately, however, each person must willingly submit to this “spiritual mode switch”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If you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 Clinging to this command, we must reorder our priorities and perspectives according to a heavenly viewpoint.
In this way, Paul’s exhortation in response to the challenges of secular thinking and legalism—“Seek the things that are above”—carries a profound message. Though we live on earth, we fix our hearts on heaven. This paradox is precisely the reality enjoyed by those who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3.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 The Hope of Glory and Practical Living
From Colossians 3:3–4, Paul declares that the believer’s being is “hidden with Christ in God,” and that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Here, he speaks of the believer’s ultimate hope—God’s future glory and the completion of resurrection. Paul also provides a detailed explanation of resurrection doctrine in 1 Corinthians 15, and the same theme is echoed in Colossians as he emphasizes the certainty that we have “died and been raised.” This conviction is the driving force that sustains the daily life of the believer.
When we say believers “have died,” it does not mean they have merely improved certain aspects of their old lifestyle. It indicates a complete break. In the Old Testament, sacrifices had to be slain before being offered to God. Likewise, our old self was thoroughly put to death with Christ on the cross. Hence, we are no longer under the dominion of sin but have become new creatures belonging entirely to God. Though our lives are still carried out in this world, their very essence is already “hidden with Christ in God.”
At Christian funerals, we often hear the hymn whose refrain is “His death is my resurrection.” This hymn, treasured by many believers, reminds us of the resurrection faith each time it is sung at a funeral. The world generally views funerals as entirely laden with sadness and final farewells. However, in a Christian funeral, we sing of resurrection hope, so it is never wholly engulfed by despair. This is the privilege given to those who possess eternal life. Jesus Himself declared,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John 11:25–26). The believer, though passing through physical death, remains in the realm of eternal life.
In many of his sermons, Pastor David Jang highlights the practical significance of this resurrection faith. A Christian’s lack of fear of death is not just wishful thinking or naive optimism; it is grounded in the assurance that “Christ’s resurrection guarantees our resurrection.” Moreover, this resurrection faith does not just speak to a distant future; it powerfully shapes how we live in the present. Those who know that earthly life is not the end can choose God’s will more boldly and freely. Even if they suffer losses by worldly standards, they can persevere, looking ahead to their ultimate reward and glory.
So how, then, should those who possess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live practically? From Colossians 3:5 onward, Paul delivers ethical exhortations: “Put to death therefore what is earthly in you: sexual immorality, impurity, passion, evil desire, and 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3:5). Having chosen “the things above,” we must discard “the things on earth.”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no longer functions as it did before. While the old life may have been driven by lust, passion, and greed, the new life relies on heavenly values and eternal life as its reference point.
Paul’s statement that covetousness is idolatry means that excessive pursuit of worldly possessions can lead to placing material things above God, which is a serious sin. In modern society, idolatry rarely involves bowing to physical idols. Far more often it is the deification of personal desires and interests, or the exaltation of worldly fame and power above God. Paul insists that those who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must decisively cast off these worldly forms of idolatry.
To achieve this, we need ongoing “spiritual vigilance.” Regardless of how well we know the gospel or how faithfully we attend church, the world’s temptations constantly bombard us. Sometimes it appears as legalism, sometimes as worldly philosophy or cultural trends, all trying to draw us away from the core of the gospel. In such moments, remembering, “I have died with Christ, and I have been raised with Him” is what safeguards us. This awareness allows us to resist old patterns of living and walk in a manner worthy of the new life.
Further, in Colossians 3:4, Paul proclaims,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leading us to fix our eyes on the “ultimate fulfillment” beyond our present trials and imperfections. Life’s hardships can wear us down, but the life we have in Christ promises participation in His future glory. The hope of the resurrection does not belittle or trivialize our present afflictions; instead, it allows us to interpret and overcome them within God’s gracious plan.
Throughout church history, countless believers have walked the path of suffering armed with this resurrection faith and the certainty of eternal life. Many were martyred or endured severe poverty and persecution, yet they remained steadfast, because they recognized that as those who “seek the things above” and have “died and risen with Christ,” they could not abandon their faith. The power to live this way does not come from within human strength. Only by the grace of Jesus Christ and the help of the Holy Spirit can believers miraculously maintain joy and courage amid life’s fiercest storms.
With this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Christians ultimately look forward to appearing “with Him in glory” at the second coming of Christ, while faithfully living out this present life. Thus, believers embrace humility, service, and love toward their neighbors, while devoting themselves to proclaiming the gospel and fulfilling the mission of evangelism. Pastor David Jang often emphasizes the need for practical actions that extend God’s kingdom and reveal the gospel through our lives here on earth. Our time in this world is marked by worshiping God, sharing love, and preaching the truth—an active participation in God’s reign and grace.
Moreover, Paul’s statement that Christ sits at the right hand of God signifies that Jesus holds ultimate authority and might. Those who are united with this Christ will share in His final victory—this is the believer’s supreme hope. Therefore, no toil or suffering here is in vain; God will reward all things in His perfect time. This faith animates us and keeps us moving forward.
In summary,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 The Hope of Glory and Practical Living” establishes that the believer’s future will culminate in glory and, on that basis, instructs us on how to live out that hope in the present. We have died with Christ and have been raised with Him. We are therefore no longer enslaved by worldly desires or tied to our old sinful nature. Instead, we put away covetousness, idolatry, immorality, and evil passions, choosing instead to “put on” the attributes of Christ—love, compassion, humility, gentleness, patience,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Such ethical practice, characterizing those who share in the resurrection, is also our tangible foretaste of the glory that is to come.
Nor do we walk this path through our own asceticism or self-discipline. Rather, because we have already received wealth and freedom through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we obey and follow God out of that abundant grace. If someone truly believes that they have been granted eternal life, salvation, the Way, and the Truth, and that the Lord fully satisfies them, how could they be so consumed by the empty offerings of the world? This grace grants us spiritual freedom that transcends worldly values.
Consequently, even at a funeral—the last moment of life here on earth—we can sing resurrection hymns. At a Christian funeral, which differs entirely from conventional customs, worship and praise ascend to God. This service reflects the reality of the eternal life we already taste. When Jesus’ proclamation—“Whoever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resounds during that gathering, a funeral is transformed from a place of mere mourning into a place of rest and the expectation of glory.
Likewise, we continually witness the power of this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in the church community and ministry settings. We help the weak, encourage those who are discouraged, and proclaim the gospel in the world, all with a living hope of resurrection. Many pastors, including David Jang, are committed to enabling the church to fully embody this resurrection faith. This effort goes beyond theoretical knowledge; it is the transmission of the gospel’s power that is tangibly experienced in both life and death.
Therefore, whether we experience wealth or poverty, laughter or tears, successes or failures, we stand on the unshakable identity of those who “have died and been raised with Christ.” Although the world is filled with shifting circumstances and challenges, our resurrection faith acts as the anchor for our souls, and the church community remains solid on this foundation. And as we wait for the day when the Lord appears in glory, we believe the promise that we, to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This is Paul’s core message. Dying and rising again with Christ defines the identity of the believer. We are no longer slaves to sin or the law, nor are we bound to hollow philosophies or idols. Through the grace and resurrection power of Jesus Christ, we have been set free and continue to “seek the things above.” Along this journey, we practice holy values and ethics not derived from this world, and we eagerly await the glory that is surely to come. This is the power of resurrection faith and the mighty proclamation found in Colossians 3. Pastors like David Jang continually preach and teach this dynamic of the gospel so that church communities may truly live out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By way of conclusion, the first section examined “The Identity and Grace of Those Who Have Been Raised with Christ.” The second looked at how to manifest that identity by “seeking the things above,” addressing the need to switch to a spiritual mode that transcends worldly challenges and legalism. The third and final section explored how we actually live out the “life that died and was raised,” embracing both the present and the future glory that awaits believers. These themes all connect in a single flow, highlighting Colossians 3’s central message: Those who are in Christ have put off the old self and put on the new self, leading to eternal life and the hope of the resurrection. In this faith, we bear witness to God’s kingdom here on earth and carry out our calling to become more like Jesus. Across all three sections, one common thread emerges: the power of the gospel, by which the identity and hope of believers are renewed in Christ.
1. La identidad y la gracia de aquellos que han resucitado con Cristo
Al observar Colosenses 3:1: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descubrimos que esta sola frase resume la identidad del creyente y la profundidad de la gracia. En la carta a la iglesia de Colosas, el apóstol Pablo señala desde el capítulo 2 cómo las posturas legalistas y la influencia de la filosofía helenista estaban sacudiendo la iglesia. Sin embargo, al llegar al capítulo 3, comienza la exhortación directa: “buscad las cosas de arriba”, enfatizando la “nueva vida” del cristiano que ha sido salvo. El inicio de este nuevo modo de vida, expresado en “si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no es un simple lema, sino el evento que transforma por completo la existencia del creyente.
Pablo recuerda el tema de Gálatas 2:20: “con Cristo estoy juntamente crucificado”, y al mismo tiempo destaca la esencia de la salvación: “resucitar con Cristo”. El ser humano, que por el pecado estaba destinado a la muerte, obtiene la vida eterna gracias a la cruz y a la resurrección de Jesucristo. De esta manera, se convierte en un ser completamente distinto. Para el creyente, la identidad anterior ya no aplica; ahora es un ser nacido de nuevo en Cristo, un poseedor de riqueza espiritual, un receptor de gracia. Cuando se declara que “todos han muerto”, no se trata de una expresión meramente formal, sino de un cambio real: el poder del evento de la cruz transforma por completo nuestra esencia.
¿Qué significado concreto encierra la frase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En ella se halla la verdad paradójica de quien parece pobre pero ya es rico. Desde el punto de vista del mundo, la riqueza se mide según la abundancia económica, la posición social o la fama. Sin embargo, la riqueza en Cristo consiste en la libertad del pecado y la promesa de la vida eterna, que es el mayor valor. Por tanto, aunque no persigamos las glorias y riquezas terrenales, tenemos la capacidad de humillarnos y de empobrecernos con libertad, basándonos en la riqueza espiritual que ya poseemos. En este sentido, el llamado a “hacerse pobre” no alude al ascetismo o a la mortificación, sino a la actitud de no tener que rendirse ante los bienes materiales o la fama mundana, puesto que ya somos ricos espiritualmente.
Esta “riqueza espiritual” proviene de la gracia. No se basa en ningún mérito o habilidad humana, sino únicamente en el poder de la cruz de Jesucristo y de su resurrección, que nos ha sido dado. Por eso podemos disfrutarla plenamente. No obstante, incluso luego de recibir esta gracia, seguimos luchando internamente con patrones de pensamiento mundanos: el afán de posesión, el afán excesivo de éxito terrenal, o la tendencia legalista de creer que nuestros logros se basan en nuestro propio mérito. Pablo se refiere a todo esto como “las cosas de la tierra” e insiste en que, si hemos resucitado con Cristo, debemos dejar atrás esa antigua forma de pensar.
Entre los pastores que predican y enseñan este mensaje cristocéntrico y lo aplican al presente,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frecuentemente lo siguiente: “Si ya hemos recibido la vida eterna mediante Jesucristo y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se ha hecho real, entonces nuestra actitud y perspectiva de vida deben cambiar fundamentalmente”. El mensaje insta a no dejarnos arrastrar por los valores del mundo, sino a “buscar las cosas de arriba” y vivir como corresponde a quienes son del cielo. No se trata de la vida de una élite especial, sino de la identidad que todo cristiano debe disfrutar.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buscad las cosas de arriba” es precisamente el punto de partida de este énfasis.
Un detalle interesante es que esta enseñanza no aboga por una visión meramente abstracta de “rechazar las cosas de la tierra”, como si tuviéramos que ingresar en un monasterio o romper por completo con la cultura contemporánea. Más bien, propone vivir con mayor plenitud y libertad, puesto que ya poseemos “las cosas de arriba”. Cuando vivimos con base en la riqueza espiritual, los bienes o la fama mundana dejan de ser la norma absoluta. La gente a menudo envidia la prosperidad material que se ve externamente, pero el creyente, que ya lo posee todo en Cristo, puede usar esa libertad para servir al mundo. Puede tender la mano al necesitado, sacrificarse y hasta empobrecerse voluntariamente, ya que es un heredero en última instancia. De esta forma, somos “pobres y, sin embargo, ricos” y, como dice 2 Corintios 6:10, “no teniendo nada, mas poseyéndolo todo” podemos vivir esa paradoja en la práctica.
La expresión paradójica “podemos empobrecernos porque ya lo hemos recibido todo” se vincula estrechamente con la vida de Jesucristo. Él, siendo igual a Dios y dueño de la gloria celestial, se despojó a sí mismo tomando forma de siervo y murió en la cruz. Su vaciamiento y sacrificio son una invitación para que los creyentes lo imiten. Sin embargo, quienes responden a esta invitación no llevan una vida solo de sufrimiento, sino que, como participantes de la gloria, avanzan en la senda de la entrega con una esperanza firme y un gozo interior.
Cuando Pablo dice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no se queda en el mero enunciado doctrinal. Es un llamado a poner en práctica la realidad de que nuestra rutina cotidiana ya ha cambiado y nuestro ser ha sido renovado, de modo que actuemos conforme a esa verdad. El creyente, “muerto y resucitado con Cristo como nueva criatura”, debe vivir siempre consciente de esta identidad. Solo así podrá desechar con valentía “las cosas de la tierra”, tales como la inmoralidad, la impureza, la pasión desenfrenada y la avaricia. Es la experiencia de la gracia —“he sido crucificado con Cristo y Cristo vive ahora en mí”— la que nos motiva a vivir de manera diferente.
En sus predicaciones y conferencias, 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recalca frecuentemente lo asombrosa que es la nueva vida que hemos recibido y la gracia que se manifiesta en Cristo, así como la manera en que se aplica de forma real a nuestro día a día. La afirmación de que “ya hemos resucitado con Cristo” significa que no necesitamos vivir más bajo la autoridad del pecado y de la muerte, sino que podemos cumplir con cualquier servicio y compromiso con la perspectiva gozosa que da la esperanza en el reino de Dios.
Además, esta nueva forma de vida, basada en la gracia, no se limita a cambiar el interior de cada uno. También produce frutos de gracia y verdad en la vida de la comunidad eclesial y de toda la sociedad. Cuando descubrimos la “identidad y la gracia” de quienes han resucitado con Cristo, nuestra mirada se dirige de forma natural a “las cosas de arriba”. En este sentido, la exhortación que sigue en Colosenses 3:1, “Buscad, pues, las cosas de arriba”, surge como una consecuencia natural de la verdad descrita previamente.
En resumen,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declara que hemos muerto y hemos vuelto a la vida, recibiendo así una nueva identidad. La gracia en Cristo difiere tanto de los méritos que exige la ley como de la riqueza terrenal. Rompe el poder del pecado que reside en nosotros y nos invita a la vida eterna. Cuando tomamos conciencia de esto, podemos abandonar libremente los deseos mundanos y disfrutar la verdadera riqueza espiritual que solo Dios nos da.
2. “Buscad las cosas de arriba” – Los desafíos seculares y el cambio al modo espiritual
Cuando Pablo exhorta a la iglesia de Colosas: “Buscad las cosas de arriba” (Colosenses 3:1), no está recomendando una actitud escapista de “mirar solo al cielo”. Por el contrario, aunque vivimos en medio del mundo, nuestro centro ya está en Cristo, y eso requiere que nuestra manera de pensar y nuestros valores cambien. Podríamos describirlo como un “cambio de modo”. En la vida de fe, no podemos mantener el “modo antiguo” —la forma de pensar mundana—, sino que debemos pasar al “modo nuevo”: la perspectiva del cielo.
¿En qué consiste este “modo nuevo” según Pablo? Leemos en Colosenses 2:8 y siguientes que la iglesia estaba siendo sacudida por la filosofía griega y la corriente del gnosticismo. También, a partir de los versículos 16 al 23 del capítulo 2, se veían exigencias de corte legalista (en especial sobre festividades, lunas nuevas, sábado, regulaciones alimentarias, etc.). Pablo se preocupaba porque la iglesia de Colosas se encontraba tambaleando entre estos dos desafíos: la corriente secular basada en la filosofía helenista y el legalismo religioso-ritual. Aun cuando ambas corrientes parecen opuestas, en el fondo comparten el peligro de desdibujar la esencia del Evangelio.
Los afectados por el gnosticismo —surgido de la filosofía helenista— consideraban la cruz y la resurrección de Jesucristo como hechos meramente “materiales y de nivel bajo”, buscando en su lugar el ámbito puramente espiritual. Prestaban excesiva atención a la supuesta sabiduría esotérica, a la adoración de ángeles y a otras creencias que terminaban confundiendo a la iglesia. Para ellos, la “gnosis” (conocimiento espiritual) solo estaba al alcance de un grupo selecto, cuya “sabiduría especial” conducía a la salvación. Por este motivo, Pablo advierte: “Nadie os defraude de vuestro premio, deleitándose en la humillación y en la adoración de los ángeles” (Col. 2:18). Quienes sostenían que “Cristo no basta” eran aquellos que no se aferraban a Él como cabeza de la iglesia y estaban atrapados en el misticismo y el sentimiento de superioridad espiritual equivocados.
Por otro lado, la amenaza legalista afirmaba que la justicia se obtenía no por la gracia de Cristo sino por obedecer reglas y ritos específicos. Pablo criticó esto mismo en la epístola a los Gálatas, oponiéndose a los partidarios de la circuncisión externa, denominada “la de la carne”, pues la salvación se alcanza por fe, no por rituales. De igual manera, en Colosenses aclara que la observancia de días de fiesta, lunas nuevas y sábados no es el fundamento de nuestra salvación. Llama a estas prácticas “sombra de lo que ha de venir” (Col. 2:17) y afirma que la realidad pertenece a Cristo.
En síntesis, estos dos desafíos —la filosofía secular y el legalismo— estaban conmocionando a la iglesia. Frente a esta situación, Pablo exhorta con fuerza: “Buscad las cosas de arriba”. El motivo es claro: la esencia de la verdadera fe no está ni en la sabiduría filosófica mundana ni en la observancia de rituales religiosos, sino en el Evangelio centrado en Jesucristo, es decir, en el poder de la cruz y de la resurrección. Buscar las cosas de arriba significa fijar la mirada en “Cristo, que está sentado a la diestra de Dios” (Col. 3:1). Él venció el poder del pecado y de la muerte mediante su resurrección y ascensión, y por ello, aunque aquí en la tierra tengamos dificultades y sufrimientos, el creyente no debe olvidar su unión con Aquel que ha triunfado definitivamente.
El pastor David Jang, al igual que Pablo, aplica esta enseñanza a la iglesia y a los creyentes de hoy, subrayando reiteradamente la importancia de “cambiar al modo espiritual”. Si seguimos pensando solamente con parámetros seculares, aun cuando asistamos al culto y aprendamos la Palabra, terminaremos valorando más “las cosas de la tierra” que “las cosas de arriba”. No obstante, la Escritura manda claramente: “Poned la mira en las cosas de arriba, no en las de la tierra” (Col. 3:2). El verbo “pensar” o “poner la mira” no indica solo un ejercicio intelectual, sino también dónde ponemos nuestras afecciones e intereses. Si nuestra vida cotidiana se centra en el éxito, las posesiones o la fama, es que seguimos en el “modo terrenal”.
Por supuesto, esto no significa “desentenderse del mundo”. Pablo también trabajó para ganarse la vida fabricando tiendas; no abandonó el mundo. Pero en todo lugar y momento daba prioridad a predicar el Evangelio y a dar gloria a Dios. “No penséis en las cosas de la tierra” no es un llamado a ser irresponsables con nuestra vida terrenal, sino a recordar que nuestra esperanza final no está en los valores de este mundo, sino en “las cosas de arriba”.
Concretamente, la exhortación “Buscad las cosas de arriba” significa que nuestra vida en su conjunto se mueva por los valores del reino de Dios. Jesús describió este reino como justicia, amor, perdón, servicio, humildad, gozo, paz, generosidad y sacrificio. Pablo repite estos mismos conceptos en diversas epístolas. Si estamos unidos a Cristo, nuestra forma de ver el mundo debe parecerse a la de Jesús. La vida de fe no se reduce a celebraciones puntuales en Semana Santa o Navidad, sino que es el proceso diario de “vivir con Cristo resucitado”.
En Colosenses 3:3 leemos el motivo de esta exhortación: “Porque habéis muerto, y vuestra vida está escondida con Cristo en Dios”. Nuestro viejo hombre ya ha muerto, y nuestra verdadera vida no pertenece a este mundo sino que está “escondida con Cristo en Dios”. El término “escondida” conlleva ideas de protección, seguridad y una futura revelación total. Aunque hoy no tengamos abundancia material, la vida verdadera está a salvo en la presencia de Dios y se manifestará plenamente al fin de los tiempos, o cuando venga Jesús. Por ende, la orden de “buscar las cosas de arriba” no es una simple negación del presente, sino una invitación a contemplar y disfrutar día a día la herencia celestial que ya nos ha sido dada.
Lo mismo se aplica a nuestro contexto actual. En esta sociedad moderna, se da gran importancia al logro visible, a la posesión material y al estatus. En redes sociales, la constante autocomplacencia y la medición del éxito por criterios meramente mundanos son comunes. Lamentablemente, la iglesia tampoco está exenta de estas influencias. A veces, incluso el mensaje cristiano se tergiversa, confundiéndose con la idea de que “la fe es un medio para alcanzar éxitos mundanos”. Sin embargo, Pablo insiste en que, sea un tipo de legalismo o una filosofía secular, cualquier doctrina que se aparte del Evangelio centrado en Cristo no tiene ningún valor real.
Por consiguiente, “Buscad las cosas de arriba — Desafíos seculares y el cambio al modo espiritual” es la tarea que todo creyente debe afrontar. Aunque en la iglesia se hable de “las cosas de arriba”, en la práctica, a menudo seguimos aferrados a “las cosas de la tierra”. Para superar esta contradicción, Pablo declara con claridad: “Si, pues,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buscad las cosas de arriba”. No es un simple consejo, sino un mandato que todo creyente ha de obedecer, un llamado a activar el “modo espiritual” y superar tanto la ambición mundana como el legalismo, confiando en el poder del Evangelio.
La iglesia como comunidad contribuye a que este cambio de modo se haga realidad. A través del culto, la predicación, la comunión y el servicio, pastores como David Jang animan a los creyentes a vivir “las cosas de arriba” de forma tangible. Sin embargo, en última instancia, cada persona debe obedecer de manera voluntaria, con la ayuda del Espíritu Santo, para hacer efectiva esta transformación. La exhortación “Si habéis resucitado con Cristo, buscad las cosas de arriba” es una orden que nos invita a alinear nuestra perspectiva y nuestras prioridades con la visión celestial.
En definitiva, este mandato de Pablo para afrontar los desafíos seculares y el legalismo nos revela la profundidad de “buscar las cosas de arriba” y se puede sintetizar en la expresión “cambiar al modo espiritual”. Aunque tengamos los pies en la tierra, nuestro corazón y nuestro objetivo final están en el cielo. Esta actitud paradójica caracteriza la vida del “que ha resucitado con Cristo”.
3. Una vida muerta y resucitada – La esperanza de gloria y la práctica de la vida
En Colosenses 3:3-4, Pablo describe al creyente como aquel cuya vida “está escondida con Cristo en Dios” y añade: “Cuando Cristo, vuestra vida, se manifieste, entonces vosotros también seréis manifestados con Él en gloria”. Este pasaje apunta a la esperanza suprema del creyente: la llegada de la gloria y la consumación de la resurrección. En 1 Corintios 15, Pablo desarrolla ampliamente la doctrina de la resurrección y, en la misma línea, en Colosenses reafirma la certeza de la vida que, tras haber “muerto y resucitado”, sostiene día a día al creyente.
Cuando Pablo dice que el creyente “ha muerto”, no se refiere a un cambio superficial o a una leve mejora. Está hablando de una ruptura total con la vida anterior. En el Antiguo Testamento, el animal destinado al sacrificio debía morir para ser ofrecido a Dios. De igual manera, nuestro viejo hombre murió con Cristo en la cruz, dejando de estar bajo el dominio del pecado. “Haber resucitado con Cristo” significa que, liberados de la esclavitud del pecado y de la muerte, ahora vivimos totalmente para Dios. Nuestra realidad sigue desarrollándose en el mundo, pero nuestra esencia está “escondida con Cristo en Dios”.
En los funerales cristianos se canta a menudo el himno que proclama: “Su muerte es mi resurrección”. Esta alabanza, tan frecuente en los entierros, nos recuerda la fe en la resurrección: “morir y volver a la vida”. Desde el punto de vista del mundo, un funeral se asocia al dolor y a la despedida; pero en el caso de un creyente, se proclama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evitando que sea un momento de completa desesperación. Es el privilegio de quienes poseen la vida eterna. Tal como dijo Jesús: “Yo soy la resurrección y la vida; el que cree en mí, aunque esté muerto, vivirá. Y todo aquel que vive y cree en mí, no morirá eternamente” (Jn. 11:25-26). Así, aunque el cuerpo físico muera, el creyente permanece en la vida eterna.
El pastor David Jang ha enseñado en diversas ocasiones el sentido práctico de esta fe en la resurrección. Para el creyente, no temer a la muerte no es un simple optimismo o una forma de autosugestión, sino que se basa en la convicción de que “la resurrección de Cristo garantiza nuestra propia resurrección”. Además, la fe en la resurrección no se limita al futuro, sino que influye poderosamente en la vida presente. Si comprendemos que la muerte física no es el fin, podemos elegir de manera más valiente y libre la senda que agrada a Dios. Incluso si esto nos acarrea pérdidas según el criterio del mundo, podemos resistir confiando en la recompensa y la gloria futuras.
¿Cómo debe vivir, entonces, aquel que posee una “vida muerta y resucitada”? Pablo ofrece una serie de exhortaciones éticas a partir de Colosenses 3:5 en adelante: “Haced morir, pues, lo terrenal en vosotros: fornicación, impureza, pasiones desordenadas, malos deseos y avaricia, que es idolatría” (3:5). Esta es la conclusión lógica de haber optado por “las cosas de arriba” y rechazado “las de la tierra”. Quien ha muerto y ha resucitado con Cristo actúa de manera distinta a la de antes. Antes, vivía dominado por la codicia y el deseo, pero ahora adopta los valores celestiales y la vida eterna como sus parámetros.
La avaricia es idolatría, ya que situar los bienes materiales por encima de Dios es un pecado grave. En la sociedad contemporánea, la idolatría no se limita a inclinarse ante ídolos de piedra o madera. El culto al propio ego, la obsesión por el dinero, la fama o el poder pueden convertirse en ídolos modernos. Pablo insta a todo creyente, ya resucitado en Cristo, a abandonar por completo tales formas de idolatría mundana.
Para ello, necesitamos una vigilancia espiritual constante. Por más que conozcamos el Evangelio y asistamos a la iglesia, las tentaciones del mundo nos acechan a cada paso, ya sea en forma de legalismo o en forma de la filosofía y la cultura de moda. Precisamente en esos momentos, la conciencia de que “yo ya morí y resucité con Cristo” nos sostiene. Este hecho nos permite distanciarnos de la vieja forma de vida y tomar decisiones acordes a la nueva existencia que tenemos.
Asimismo, en Colosenses 3:4, Pablo declara: “Cuando Cristo, vuestra vida, se manifieste, entonces vosotros también seréis manifestados con Él en gloria”, invitándonos a trascender el sufrimiento y la imperfección de esta etapa hacia su “consumación definitiva”. Si bien hoy podemos sentirnos cansados y desanimados ante las pruebas, la vida en Cristo nos garantiza una participación futura en la gloria celestial. La fe en la resurrección no ignora ni minimiza el dolor presente, sino que lo ubica en el marco del plan bondadoso de Dios, proporcionándonos el fundamento para superarlo.
A lo largo de la historia de la iglesia, muchos creyentes han soportado persecuciones e incluso el martirio, aferrándose a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y la vida eterna. Ni siquiera el sufrimiento extremo pudo apartarlos de su fe, porque la gracia de Jesucristo y la ayuda del Espíritu Santo les permitieron conservar la alegría y la valentía en medio de la tormenta.
Así, el cristiano que ha “muerto y resucitado” con Cristo vive con fidelidad en este mundo, mientras espera el día en que aparecerá “en gloria con Él”. Por eso, el creyente practica la humildad, el servicio y el amor, evangeliza y cumple su misión, convencido de que su trabajo terrenal no es en vano, ya que el Señor, a su tiempo, lo recompensará con creces. El pastor David Jang hace hincapié en la necesidad de vivir el Evangelio y de expandir el reino de Dios, pues quienes tienen la seguridad de la vida eterna adoran a Dios, aman a otros y anuncian la Verdad. De esta manera, se convierten en instrumentos de la gracia y el gobierno divino.
Además, la posición de Jesús “a la diestra de Dios” expresa que Él es el Rey supremo, dueño de toda autoridad y poder. El creyente, unido a Jesús, participa al final en este triunfo. Esa promesa es la esperanza del cristiano, que ve garantizada la victoria definitiva. Por ello, los sufrimientos y las luchas de hoy no son vanos: Dios tiene un tiempo perfecto para cada cosa y, en última instancia, brindará una restitución perfecta.
En síntesis, “Una vida muerta y resucitada – La esperanza de gloria y la práctica de la vida” se basa en la certeza de que nuestro futuro culminará en gloria, y muestra cómo hoy ponemos en práctica esa esperanza. Quien ha muerto y ha resucitado con Cristo ya no está sometido al pecado ni a la ley, ni a la filosofía o a la vanagloria mundana, sino que vive en libertad gracias a la gracia y al poder de la resurrección. Por ende, descartamos la codicia y la idolatría, y abrazamos el amor, la compasión, la humildad, la mansedumbre, la paciencia, el perdón y la reconciliación: el carácter mismo de Cristo. Esta es la vía de la ética cristiana que adelanta la gloria futura.
No es que transitemos este camino con nuestras propias fuerzas o a través del ascetismo. Se basa en la gracia que ya nos ha hecho ricos y libres, por la muerte y resurrección de Jesús. Alguien que exclama: “He hallado la vida eterna, he recibido salvación, he encontrado la Verdad y Cristo es mi satisfacción” no se aferra en demasía a las cosas vanas de este mundo. Esta gracia es la que nos permite vivir con una libertad espiritual que va más allá de los criterios seculares.
De la misma manera, incluso en los momentos finales de la vida, es decir, en un funeral cristiano, podemos cantar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Lejos de ser una mera ceremonia de dolor, un funeral cristiano es una ocasión para proclamar la verdadera paz y gloria que aguardamos. Cuando se lee la promesa del Señor: “el que cree en mí, aunque esté muerto, vivirá”, el ambiente se transforma de uno de tristeza absoluta a uno de fe y esperanza.
Del mismo modo, en la comunidad eclesial y el ministerio pastoral, constatamos el poder de esta “vida muerta y resucitada” a diario. Al ayudar a los hermanos débiles, al animar a quienes están desalentados, al llevar el Evangelio al mundo,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se hace patente. Pastores como David Jang, entre otros, trabajan para que la iglesia encarne profundamente esta fe. Y no se trata simplemente de un conocimiento teórico, sino de la transmisión de la potencia real del Evangelio en medio de la vida y la muerte.
En definitiva, en este mundo experimentamos abundancia y escasez, risas y lágrimas, éxitos y fracasos. Pero como poseedores de una “vida muerta y resucitada” en Cristo, jamás perdemos nuestra identidad. Aunque el mundo cambie y ataque, la fe en la resurrección es el ancla de nuestra alma, y la comunidad eclesial permanece firme gracias a esa fe. Y cuando venga el Señor en gloria, también nosotros seremos manifestados en gloria con Él.
Ese es el mensaje clave de Pablo. Nuestra identidad cristiana radica en haber muerto y resucitado con Cristo. Ya no estamos esclavizados al pecado o a la ley, ni a las filosofías vacías del mundo. La gracia de Jesucristo y el poder de Su resurrección nos han hecho libres, y desde ese lugar de libertad perseguimos “las cosas de arriba”. En ese proceso, vivimos e impulsamos valores y una ética que no pertenecen a este mundo, y esperamos con gozo la gloria venidera. Este es el poder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y la proclamación central de Colosenses 3. Y pastores como David Jang, así como muchos otros líderes, siguen difundiendo y enseñando este Evangelio dinámico para que la iglesia encarne día tras día la “vida muerta y resucitada”.
En conclusión, en el primer punto examinamos la identidad y la gracia de los que han “resucitado con Cristo”. En el segundo, vimos cómo esa identidad se traduce en la búsqueda de “las cosas de arriba”, superando los desafíos seculares y el legalismo al cambiar al modo espiritual. Por último, en el tercer punto, exploramos la práctica real de quien posee esta “vida muerta y resucitada”, así como la esperanza de la gloria futura. Todos estos temas conforman un mensaje interconectado y representan la esencia de Colosenses 3. El creyente, habiendo desechado al viejo hombre y revestido el nuevo, se aferra a la vida eterna y a la esperanza de la resurrección. Y con esa fe, testifica del reino de Dios en la tierra y transforma el mundo imitando a Cristo. Este es el hilo conductor que atraviesa los tres puntos y que, en definitiva, evidencia el poder del Evangelio: en Cristo todo es hecho nuevo, y el creyente vive con una identidad y una esperanza inquebrantables.
우리가 골로새서 3장 1절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는 선언을 들여다보면, 이 한 구절이 신앙의 정체성과 은혜의 깊이를 요약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미 2장에서부터 율법주의적인 주장과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교회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3장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위의 것을 찾으라”라는 권면을 시작하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새로운 삶’을 강조한다. 바울이 제시하는 이 새로운 삶, 곧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는 서두는 단지 구호나 표어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존재 전체를 바꿔놓는 사건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주제를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라는 구원의 진수를 말한다. 본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영생을 얻고, 이로써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자에게는 더 이상 그 이전의 정체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난 존재로, 부요함을 이미 소유한 자로,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다 죽었다”고 말할 때, 이는 형식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적 변화, 즉 십자가 사건의 능력이 우리의 본질을 송두리째 뒤바꾸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는 이 문장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가난하지만 이미 부요한 자라는 역설의 진리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 명예 등을 통해 부유함을 측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요함이란, 죄에서 자유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존재가 누리는 최고의 가치다. 그러므로 세상적 부귀영화를 좇지 않고도, 이미 영적 부요함에 근거해 자신을 낮추고 가난해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 점에서 “가난해지자”는 말이 단지 금욕주의나 고행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영적으로 풍성한 자이기 때문에, 물질적 것이나 세상적 명예에 굴복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 ‘영적 부요함’은 은혜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어떠한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능력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그 부요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적인 사고방식, 즉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움켜쥐고 싶어 하는 소유욕, 세상적 성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모습, 혹은 자기 공로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율법주의적인 경향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땅의 것”이라고 말하며,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그러한 옛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러한 복음의 핵심과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현대에 적용하여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들 가운데, 장재형목사는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고, 부활의 소망이 실제가 되었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와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라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세상 가치관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고 하늘에 속한 존재답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특별한 소수만의 삶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이 누려야 할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라는 말씀이 바로 이 강조점의 출발이 된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가르침이 단순히 관념적으로 ‘땅의 것’을 배제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세상 문화를 전면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위의 것’을 소유한 자의 여유와 자유로 인해 삶을 더 풍성하게 누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영적 부요함에 기초해 살면, 세상의 재화나 명예가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물질적 풍족함을 부러워하지만, 사실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신자는 그 여유로 세상을 섬길 수 있게 된다. 약자에게 기꺼이 손 내밀고, 자신을 희생하며,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상속자가 이미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난할지라도 부유한 자’이며, ‘무소유하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린도후서 6장 10절 참조)의 삶을 실제로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이미 얻었기 때문에 가난해질 수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수님 역시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 하늘 영광을 소유하셨으나, 이 땅에 오셔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비우셨다. 이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희생은, 신자들에게 ‘그분을 닮아가라’는 초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기만 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광에 참여한 자로서, 확실한 소망을 품고 기쁨 중에 헌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바울이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고 할 때, 이것은 단지 교리적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일상 자체가 이미 바뀌었고, 존재론적으로 변화되었으니,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촉구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새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음란과 부정, 사욕과 탐심 등으로 대표되는 ‘땅의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고백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라는 은혜의 경험이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가 된다.
장재형목사 역시 여러 설교와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실제 삶에 적용되는지를 강조한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선언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역과 헌신을 하든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서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은혜에 입각한 새로운 삶의 방식은 개인의 내면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또 사회 전반에서 은혜와 진리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의 정체성과 은혜’를 깨달으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관점은 ‘위의 것’을 향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곧 이어지는 바울의 말,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라는 권면은 매우 자연스럽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미 죽었고, 동시에 다시 살아난 자로서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는 선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는 율법적 행위나 세속적 부유함과 다르며, 우리 안에 내재된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한다. 이 사실을 붙들 때, 우리는 자유로이 세상적인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주시는 영적 부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위의 것을 찾으라 – 세속적 도전과 영적 모드 전환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위엣 것을 찾으라”라고 당부할 때(골로새서 3장 1절), 단순히 “하늘만 바라보라”는 식의 비현실적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세상 한복판에서 살지만, 그 중심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를 일종의 ‘모드 전환’이라 부를 수 있겠다. 신앙생활에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방식으로만 사고하는 ‘옛 모드’를 유지하기보다는, ‘하늘의 관점’으로 사고하는‘새 모드’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이 ‘새 모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우리는 골로새서 2장 8절 이하에서 헬라 철학과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흔들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2장 16~23절에서 언급되는 율법주의적 요구(특히 절기, 월삭, 안식일, 음식 규정 등)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을 제공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이 두 가지 도전 – 헬라 철학을 비롯한 세속적·이성주의적 도전과, 율법주의적 교리·의식주의적 신앙 형태 –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을 염려했다. 이 둘은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나, 사실상 복음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위험성을 가진다.
헬라 철학에 근간을 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실제 사건을 그저 “하등한 육체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폄하하면서, 오직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려고 했다. 이때 영적 계시나 천사 숭배 등을 강조하면서, 교회 안에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람들이 말하는 ‘영지(靈知, Gnosis)’란, 오직 소수의 특수한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이것이 바로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골로새서 2장 18절)는 바울의 경고 배경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이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아니하는, 잘못된 영적 우월감이나 신비주의에 빠진 것이다.
반면, 또 다른 도전인 율법주의는 구원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특정 의식이나 규정의 준수에 둔다. 바울은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갈라디아서에서도 비판했는데, “손할례당”이라고 칭하며, 손으로 행하는 육체적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 골로새서에서도 마찬가지로, 절기나 월삭, 안식일 등을 지켜야만 하나님께 의로움을 인정받는다는 식의 주장을 교회가 수용하지 않도록 경고했다. 바울은 이것을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부르면서, 실체는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다”(골로새서 2장 17절)고 단언한다.
결국 이 두 가지 도전은 각각 ‘세속적 이성’과 ‘율법적 의식주의’라는 형태로 교회를 흔들고 있었다.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의 본질은 세상의 철학적 지식이나 종교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에 뿌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주목한다는 뜻이다(골로새서 3장 1절).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이미 죽음과 죄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분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리 힘겹고 고통스러워도, 궁극적으로 승리하신 주님과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바울의 가르침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영적 모드 전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면서도, 우리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세상적 가치관과 습관에 갇혀 있다면, 결국 “위의 것”보다는 “땅의 것”을 더 우선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골로새서 3장 2절)고 명령한다. 여기서 “생각한다”라는 동사는 단순한 지적 사유가 아니라, 관심과 애착을 어디에 두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즉, 우리의 일상적 관심사가 세상의 성공이나 소유, 명예에만 쏠려 있다면, 그것은 곧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모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된다.
물론 이것이 “세상에서 손을 떼라”는 식의 현실 도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도 생업이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되, 그 중심에는 주님을 향한 경외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계속 가르친다. 바울 자신도 텐트메이커로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세상을 떠나서 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세상 일에 무책임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소망을 둬야 할 지점이 세상적 가치가 아닌 “위의 것”임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위의 것을 찾으라”는 권면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근거해 움직이도록 모드 전환을 하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란, 죄 용서와 사랑, 섬김과 겸손, 기쁨과 평안, 나눔과 희생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울은 이를 골로새서뿐만 아니라 여러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면, 우리의 가치관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신앙생활은 부활절 하루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기뻐하는 행사가 아니라, 매일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 3절에서 그 이유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라고 밝힌다.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신자의 진정한 생명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감추어져 있다’는 표현은 보호와 안전, 그리고 궁극적 발견을 암시한다. 지금 당장은 세상적으로 큰 부귀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 품 안에 보존되며, 종말의 때 혹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완전히 드러난다는 의미다. 따라서 “위의 것을 찾으라”는 명령은, 단지 현세의 삶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상속을 매일 바라보고 누리라는 초대인 셈이다.
이처럼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큰 도전을 준다.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는 업적과 소유, 지위를 지극히 강조한다. SNS에 끊임없이 자신을 과시하거나, 물질적 성공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풍토가 만연하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조차 이런 세속적 가치관이 그대로 들어오고, 심지어 율법적 잣대와 결합해 버리면, 복음의 본질은 퇴색되고 만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라는 말이 자칫 “세상적인 성공을 더 쉽게 얻는다”라는 의미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주의든 세속적 철학이든, 오직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과 거리가 멀면 결국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일갈한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찾으라 – 세속적 도전과 영적 모드 전환”은, 신자가 스스로 점검해야 할 과제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주일예배나 성경 공부를 통해서는 “위의 것”을 말하지만, 실제 삶에선 여전히 “땅의 것”에 휘둘릴 때가 많다. 바울은 이 모순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분명한 선언을 던진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이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명령이며, 신자라면 반드시 따르도록 초대받은 길이다. 세속적 욕망과 율법주의 모두를 넘어서는 복음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영적 모드’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교회를 통해서도 구체화된다. 교회 공동체는 신자들에게 복음적 가치와 실천을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장재형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은, 예배와 말씀 선포, 교제와 봉사를 통해 신자들이 “위의 것”을 실제 삶에서 구현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각 사람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 모드 전환’에 자발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관점과 우선순위를 하늘의 시각에 맞추어야 함을 날마다 되새겨야 한다.
따라서 세속적 도전과 율법적 도전에 대응하는 바울의 권면인 “위의 것을 찾으라”에 담긴 깊은 의미를 풀어내고, 이를 ‘영적 모드 전환’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그 중심과 궁극적 목표는 하늘에 두고 살아간다. 이 역설적인 태도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자”가 누리는 삶이다.
죽었고 다시 산 생명 – 영광의 소망과 삶의 실천
바울은 골로새서 3장 3절부터 4절에 걸쳐, 신자의 존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선언하고,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신자가 지닌 궁극적인 소망, 곧 영광의 도래와 부활의 완성에 관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 교리를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는데, 바로 그 맥락에서 골로새서에서도 “죽었고 다시 산 생명”에 대한 확신이 강조된다. 이 확신이야말로 신자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동력이 된다.
신자가 “죽었다”는 것은, 단지 옛 생활을 어느 정도 개선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전적인 단절을 뜻한다. 구약에서 제물은 죽임을 당해야 하나님께 드려졌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 사람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과거의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가리킨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세상 한복판에서 펼쳐지지만, 그 본질은 이미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장례식에서 종종 울려 퍼지는 찬송, “그의 죽음이 나의 부활”이라는 가사가 있다. 그것은 많은 성도가 즐겨 부르는 찬송이지만, 동시에 장례식에서 부를 때마다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 신앙을 상기하게 된다. 세상의 장례는 보통 슬픔과 이별의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크리스천 장례에서는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기에 완전히 절망적인 분위기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는 영생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1장 25~26절)고 하신 말씀대로, 신자는 육체의 죽음을 통과해도 여전히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한다는 믿음을 품는다.
장재형목사는 여러 차례 설교에서 이 부활 신앙의 실제적 의미를 강조해 왔다. 신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정신 승리나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보증이 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또한 이 부활 신앙은 단순히 미래에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된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좀 더 담대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설령 세상의 기준에서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궁극적인 상급과 영광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을 소유한 자의 구체적 삶은 어떠해야 할까? 바울은 이어지는 골로새서 3장 5절 이하에서 윤리적 권면을 펼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장 5절). 이미 “위의 것”을 선택했으니 “땅의 것”을 버리라는 논리적 결론이다.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예전에는 욕망과 정욕, 소유욕에 이끌렸다면, 이제는 하늘 가치와 영원한 생명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탐심이 우상 숭배라는 말은, 우리가 세상 재물을 추구하는 마음이 결국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우선시하게 만드는 심각한 죄임을 환기한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우상 숭배는 더 이상 돌이나 나무 앞에 절을 하는 형태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신격화하거나,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모든 행위가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자라면, 이러한 세속적 우상 숭배 형태를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영적 경계’가 필요하다. 아무리 복음을 알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세상 속에서 수많은 유혹이 밀려온다. 때론 율법주의의 형태로, 때론 세속적 철학이나 문화적 트렌드로, 우리를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때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았다”는 의식이 우리를 붙잡아 준다. 옛 생활 방식에 매이지 않고, 새 생명에 합당한 길을 택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바울은 골로새서 3장 4절에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선언함으로써, 현재의 고난이나 불완전함을 넘어서는 ‘궁극적 완성’을 바라보게 한다. 세상에서 겪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 지치고 낙심하기 쉽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은 이미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미래를 보장받고 있다. 부활 신앙은 현재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축소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서 해석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소망의 근거가 된다.
실제로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성도가 이 부활 신앙과 영생의 확신을 붙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순교를 당하거나, 혹은 극심한 가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위의 것을 찾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산 생명”이라는 자각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이를 위한 능력이 인간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신자가 놀랍게도 세상의 폭풍우 한가운데서도 기쁨과 담대함을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을 지닌 신자는, 궁극적으로 “영광 중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현세의 삶도 충실히 살아간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겸손과 섬김,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면서, 동시에 복음 증거와 선교 사명에 매진한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실천이 필요함을 거듭 역설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영생을 보증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사랑을 나누며, 진리를 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의 도구가 된다.
또한 바울이 말하는 ‘영광의 자리’, 곧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모든 권세와 능력의 절정에 계신 왕이심을 의미한다. 그 예수님과 연합된 신자는, 결국 승리의 최종 장면에 동참할 것이며, 이 사실이 바로 성도의 궁극적 소망이 된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고난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모든 것을 선하게 갚아 주신다는 믿음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정리하자면 “죽었고 다시 산 생명 – 영광의 소망과 삶의 실천”은, 신자의 궁극적 미래가 영광으로 마무리됨을 전제하면서,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그 소망을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았다. 그러므로 우리 삶은 단지 세속적 욕망의 노예가 아니며, 옛 사람의 죄성에 속박당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탐심과 우상 숭배, 음란과 악한 정욕을 끊어내고, 오히려 사랑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용서와 화해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이것이 부활을 소유한 자들이 세상 안에서 펼쳐야 할 윤리적 실천이며, 장차 올 영광을 앞당겨 맛보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단지 자기 수양이나 고행의 방식으로 이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부요함과 자유를 얻었으므로, 그 은혜에 근거해 순종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았고, 길을 찾았고, 진리를 얻었으니 주는 나의 만족이다”라고 말하면서 세상의 헛된 것들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겠는가? 바로 이 은혜야말로, 세상 가치관을 뛰어넘는 영적 자유를 우리에게 허락한다.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장례식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부활 소망을 노래할 수 있게 된다. 신자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에서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은, 세상적인 관습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며,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영생의 실제를 반영한다.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선언이 그 자리에 선포될 때, 장례식은 슬픔만 있는 자리가 아닌, 참된 안식과 영광을 바라보는 자리로 변모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나 목회 현장에서 우리는 이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의 능력을 날마다 확인하게 된다. 때로는 연약한 지체를 돕고, 낙심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 부활 소망이 강력히 작동한다. 장재형목사를 포함한 많은 목회자들은 이러한 부활 신앙의 실제가 교회 내에서 더 깊이 체화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한다. 이는 단지 지식적 가르침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현장 속에서 확실히 경험되는 복음의 능력을 전승하는 것이다.
곧, 우리가 이 땅에서 부유함과 가난함, 웃음과 눈물,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을 지녔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다. 세상은 수많은 변화와 도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 부활 신앙이 영혼의 닻이 되어 주고, 교회 공동체 역시 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선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이 영광 중에 나타나실 그날,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약속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간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죽었고 다시 산 생명, 그것이 신자의 정체성이다. 더 이상 죄의 종이나 율법의 종이 아니며, 세상 철학이나 헛된 우상에 구속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된 존재로서, “위의 것을 찾는” 방향으로 인생의 항해를 계속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가치관과 윤리를 실천하며, 궁극적으로 다가올 영광을 고대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신자가 누리는 부활 신앙의 능력이자, 골로새서 3장에 담긴 복음의 강력한 선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의 역동성을, 장재형목사를 비롯하여 여러 목회자들이 계속해서 전하고 가르치면서, 교회 공동체가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을 살아내도록 이끌고 있다.
결국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소주제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의 정체성과 은혜’라는 측면을 확인했다. 두 번째 소주제에서는 그 정체성을 어떻게 ‘위의 것을 찾는’ 삶으로 구체화하는지, 세속적 도전과 율법주의를 넘어서는 영적 모드 전환에 대해 살폈다. 마지막 세 번째 소주제에서는, “죽었고 다시 산 생명”을 실제로 살아내며, 그 생명이 궁극적으로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라는 신자들의 소망과 실천을 다루었다. 이는 모두가 연결된 흐름이며, 바로 골로새서 3장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었으며, 이는 곧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이렇게 세 가지 소주제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결국 ‘복음의 능력’이며, 그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소망이다.
Lorsque l’apôtre Paul déclare avec force, dans Romains 1.16,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il n’exprime pas simplement une conviction personnelle. Il proclame, au cœur même de l’imposant Empire romain, une confession de foi intrépide qui ne se laisse pas intimider. À l’époque où Paul écrit sa lettre, l’Empire romain (Roman Empire) était à son apogée, jouissant d’un immense pouvoir politique et militaire ainsi que d’une culture resplendissante. Prêcher l’Évangile face à une telle puissance séculière n’avait rien de facile. Songeons aux nombreuses persécutions que Paul a subies – emprisonnements, coups et bien d’autres épreuves – pour avoir annoncé l’Évangile. De ce fait, son affirmation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prend tout son relief : elle est à la fois un acte de volonté décisif et une confession de foi profonde.
Dans 1 Corinthiens 4.13, Paul confesse que ceux qui proclament l’Évangile sont parfois « traités comme les balayures du monde, le rebut de tous ». Il évoque ici la situation des chrétiens de l’Église de Corinthe, montrant à quel point la société de l’époque considérait souvent les croyants comme des gens de l’échelon le plus bas. Corinthe était une cité d’une importance stratégique, à la fois sur les plans commercial et militaire. Elle occupait une place considérable au sein de l’Empire romain. Toutefois, les chrétiens qui y vivaient ne bénéficiaient ni d’un pouvoir social ni d’une aisance financière, et ils se trouvaient donc exposés à la raillerie, au mépris, voire à la persécution directe. Paul souligne cependant que ces croyants, traités comme le « rebut de tous », sont en réalité comme des « vases de terre qui contiennent un trésor » (2 Co 4.7), appelés à être porteurs de la puissance et du salut de Dieu.
Rome, quant à elle, était bien plus grande et plus prestigieuse encore que Corinthe. Aujourd’hui, il ne nous en reste que des ruines et vestiges de deux mille ans, mais ces reliques donnent une idée de la splendeur et de la puissance d’autrefois. Son armée redoutable, son économie florissante et son immense empire, qui soumettait puis intégrait de nombreux peuples, faisaient d’elle la capitale du monde. Oser y annoncer la Croix sanglante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pouvait passer, du point de vue séculier, pour une folie ou une honte. Paul, pourtant, déclare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affirmant ainsi que, si puissante fût Rome, toute personne a besoin du salut qu’apporte la puissance de l’Évangile.
D’où Paul tirait-il cette hardiesse ? Il avait rencontré personnellement le Christ ressuscité sur le chemin de Damas (Ac 9) et était convaincu que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e Jésus étaient l’unique voie de salut pour l’humanité pécheresse. Paul était sûr d’être sauvé grâce à cet Évangile, et savait aussi que cet Évangile est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Même s’il devait affronter la honte ou l’opprobre, la Parole de la Croix, disait-il, « est folie pour ceux qui périssent, mais pour nous qui sommes sauvés, elle est une puissance de Dieu » (1 Co 1.18).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ui aussi toute l’importance de ce passage de Romains 1.16-17. À notre époque, bien des Églises et des croyants, confrontés aux valeurs du monde, à l’opulence matérielle et au prestige intellectuel, ou encore aux progrès scientifiques et technologiques, semblent parfois mal à l’aise et tentés d’éprouver une sorte de honte. À la question : « La Croix a-t-elle encore du sens pour l’humanité moderne ? Pouvons-nous vraiment croire à la mort et à la Résurrection de Jésus ? », certains se crispent et cachent même qu’ils vont à l’Église. Pourtant, comme l’a clairement enseigné Paul, aucune civilisation, pas même la Rome la plus glorieuse, ni aucune gloire terrestre, ne peut se substituer à « l’Évangile ».
À l’époque de Paul, il y avait déjà des « Grecs sages », experts dans l’art de la rhétorique et de la critique intellectuelle, qui jugeaient l’Évangile, et en particulier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comme de la « folie ». Du côté juif, on considérait « maudit celui qui est pendu au bois », ce qui rendait la mort de Jésus sur la Croix difficile à accepter. Malgré tout, Paul proclame : « Les Juifs demandent des miracles et les Grecs cherchent la sagesse : nous, nous prêchons Christ crucifié » (1 Co 1.22-23). Il ne se laissait aucunement enfermer par les courants de pensée ni par les traditions de son temps. À ses yeux, seul l’Évangile pouvait sauver le pécheur et transformer le monde. Au milieu des moqueries et persécutions, il renouvelait sans cesse sa résolution de ne pas « avoir honte de l’Évangile ».
L’expression « ne pas avoir honte » recèle plus qu’une simple fierté ; elle révèle un profond secret de foi. Paul adressait le même message au redoutable empire romain, aux Grecs sûrs de leur philosophie et aux Juifs attachés à leurs traditions : ce message vaut toujours aujourd’hui. Si, de nos jours, beaucoup se glorifient de leurs biens matériels, de leurs connaissances, de leur pouvoir ou de leur réussite culturelle, aucun de ces atouts n’a le pouvoir de sauver les âmes. L’humanité est en train de se noyer spirituellement, et la seule bouée de secours reste « l’Évangile ». C’était là la certitude de Paul, et c’est aussi ce que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inlassablement dans ses prédications et ses écrits. L’Église doit garder la hardiesse de proclamer l’Évangile même dans l’ère postmoderne, sans jamais en avoir honte.
Pourquoi Paul dit-il en premier lieu : « Je n’ai pas honte » ? C’est pour proclamer, même au cœur d’une puissance colossale comme Rome, que « cet Évangile est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Aux yeux du monde, la Croix peut sembler dérisoire, mais elle renferme la puissance salvatrice de Dieu, capable de changer le destin de l’humanité. Rome, la sagesse grecque et la tradition juive ne pouvaient échapper au jugement divin sans le salut qu’apporte l’Évangile. C’est pourquoi Paul déclare que l’Évangile n’est pas un sujet de honte, mais plutôt un sujet de fierté, car il est la « puissance de Dieu ».
Dans l’histoire de l’Église, ceux qui ont proclamé l’Évangile sans en avoir honte ont souvent provoqué de véritables tournants historiques. Les martyrs de l’Église primitive ont fièrement tenu bon dans la foi, allant jusqu’au sacrifice suprême. Les réformateurs se sont dressés face aux institutions du Moyen Âge pour proclamer la vérité de l’Évangile, ouvrant ainsi une ère nouvelle. De nombreux missionnaires modernes, malgré toutes sortes d’adversités, continuent de prêcher la Croix sans en avoir honte, ramenant à Dieu un grand nombre de personnes. Ainsi, le mot d’ordre de Paul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demeure une puissante exhortation pour chacun de nous aujourd’hui.
Certes, nous pouvons, comme tout un chacun, nous intéresser aux sciences, aux arts et aux techniques de notre époque. Nous pouvons même adopter ce qu’ils offrent de bénéfique. Cependant, nous devons nous rappeler qu’aucune de ces choses ne peut assurer le salut de l’humanité. Car l’Évangile seul est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Paul met d’emblée l’accent, dans l’incipit de l’Épître aux Romains, sur cette question du salut, qui touche directement à la vie de l’âme. Ni les stratégies, ni les gloires humaines, ni les connaissances du monde ne peuvent conférer la « vie éternelle » : il n’y a que l’Évangile qui en soit le moyen, et Paul ne pouvait le taire.
Aujourd’hui, malgré les progrès considérables de la science, de la médecine et de la connaissance, l’âme humaine ne trouve ni paix ni rémission de la culpabilité, pas plus qu’elle n’échappe à l’angoisse de la mort. Parfois, le confort matériel et la complexité grandissante de la vie ne font que mettre en évidence l’impasse spirituelle. Les questions ultimes – « Pourquoi vivons-nous ? », « Qu’y a-t-il après la mort ? », « Quel est le sens de la vie ? » – demeurent insolubles tant que le péché humain et la finitude de l’homme ne sont pas résolus. Devant ce constat, l’affirmation de Paul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 n’en ressort que plus éclatante. Beaucoup peuvent juger l’Évangile dépassé ou non scientifique, mais Paul y voyait au contraire la suprême sagesse et l’unique espérance pour une humanité qui se meurt. Le pasteur David Jang, dans ses sermons et ses écrits, répète souvent que même la technologie la plus avancée ne peut ni sauver le pécheur ni soigner les maux fondamentaux de l’âme. Si l’Église hésite ou a honte de proclamer l’Évangile, c’est alors qu’elle dissimule à un monde désespérément en quête de la vérité la seule réponse vitale qui puisse le sauver.
Tout comme Paul qualifiait les chrétiens de Corinthe de « balayures du monde », l’Église actuelle peut paraître démunie aux yeux du monde. Son rayonnement concret semble parfois bien faible, et elle est fréquemment l’objet de critiques. Pourtant, au milieu de cette réalité, le noyau essentiel que l’Église ne doit jamais perdre, c’est « l’Évangile ». Vivre l’Évangile, le garder, le proclamer avec courage : voilà la mission fondamentale du croyant. En effet, le salut ne se trouve dans rien d’autre, et il n’y a pas d’autre puissance à même de résoudre radicalement la condition humaine que l’Évangile. Si nous ne l’oublions pas, l’Église manifestera sa vraie nature, et le croyant s’attachera à une vérité d’une valeur incomparable.
Paul emploie, dans Romains 1.16, la conjonction « Car » (dans plusieurs versions, le texte grec commence effectivement par un « Car »), introduisant ainsi la raison pour laquelle il n’a pas honte de l’Évangile. Il explique : « Car c’est une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Pour lui, l’Évangile est la force qui transforme le monde et arrache l’humanité à la mort causée par le péché. Aussi Paul ne songeait-il pas à dissimuler cet Évangile, malgré son apparente faiblesse aux yeux de la société. Que l’on soit Juif, Grec ou d’une autre origine, chacun a besoin de ce salut, et Paul se considère investi d’une mission universelle : faire connaître l’Évangile à toutes les nations. Il nous appartient aujourd’hui, de la même façon, de retenir l’attitude de Paul. Si le monde nous paraît brillant, sachons répéter : « En fin de compte, sans l’Évangile, il n’y a rien. »
La déclaration de Paul n’appartient pas qu’au passé. Elle traverse le temps et demeure très actuelle : même si la culture et le savoir ont évolué, le péché persiste et la mort reste notre lot. Les explications de la science ou la technologie médicale ne peuvent guérir la peur de la mort ni la rupture spirituelle qui sépare l’homme de Dieu. Les âmes humaines, tourmentées par le vide intérieur et le sentiment de culpabilité, ne trouveront leur repos et leur rédemption qu’en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e Jésus-Christ. C’est pourquoi, à l’exemple de Paul, nous devons encore proclamer, au cœur de notre monde moderne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C’est la leçon essentielle de ce premier volet que nous soulignons ici.
II. La puissance du salut accordée par la foi
Paul enchaîne en déclarant, dans Romains 1.16, seconde partie : « cet Évangile est une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L’Évangile n’est pas seulement une « bonne nouvelle » ou une « belle histoire émouvante » : c’est la puissance (dynamis) capable de sauver le pécheur. Aucun système philosophique, aucune autorité politique, ni aucune structure institutionnelle ne peut accomplir cela. Paul est convaincu que l’Évangile, lui, le peut. À cette époque, la société romaine était fière de sa culture et de son raffinement intellectuel. En outre, le polythéisme régnait, et une multitude de divinités païennes étaient vénérées. Pourtant, Paul n’en fut ni effrayé ni complexé. Il était certain qu’en dépit de la course de l’humanité à sa propre ruine, la solution pour chacun résidait dans l’Évangile.
Le salut (sōtēria) dont parle Paul ne se limite pas à l’idée d’« échapper à l’enfer pour aller au ciel ». Il désigne la recréation totale de l’être humain dans la puissance de Dieu : la libération de l’esclavage du péché, de la mort et de Satan ; l’adoption comme enfant de Dieu ; la participation à la vie éternelle. C’est précisément ce dont l’humanité a le plus besoin et que seule la Bonne Nouvelle, l’Évangile, peut lui apporter.
Paul ajoute : « au Juif premièrement, puis au Grec ». Lui-même était Juif et connaissait l’histoire de l’attente messianique. Il savait que Jésus-Christ était apparu en Judée et qu’à travers Israël les prophéties du salut s’étaient accomplies. Il était donc logique que le message du salut parvienne d’abord aux Juifs. Mais il souligne aussitôt que la portée de l’Évangile s’étend à tous, y compris aux païens grecs. Il insiste ainsi sur l’universalité du salut. Les Écritures de l’Ancien Testament le laissaient déjà pressentir, et la venue de Jésus a définitivement ouvert cette ère nouvelle. Le pasteur David Jang met souvent en évidence ce point : le salut s’adresse à tous les humains, sans distinction de culture ou de statut social. Jésus est venu pour chaque pécheur, et quiconque croit, sans considération d’origine, peut être sauvé. L’essor rapide de l’Église apostolique montre bien que l’Évangile traverse les frontières et touche toutes sortes de peuples. C’est là la preuve de la force de l’Évangile à renverser les barrières du monde.
Comment l’Évangile exerce-t-il cette « puissance » ? Paul déclare en 1 Corinthiens 1.18 : « La parole de la Croix est folie pour ceux qui périssent ; mais pour nous qui sommes sauvés, elle est une puissance de Dieu. » Autrement dit, la « puissance du salut » repose sur la « Croix ». Le sang versé par le Christ et son sacrifice expiatoire sur la Croix, suivi de sa Résurrection, sont la clé même du salut du pécheur.
Les Juifs recherchaient des signes miraculeux, les Grecs la sagesse, mais Paul répondait en prêchant « Christ crucifié ». La voie que Dieu a choisie pour intervenir dans l’histoire est radicalement différente des attentes humaines. Nous aurions pu croire que le salut viendrait par la puissance ou la sagesse philosophique, mais c’est l’abaissement et le sacrifice de la Croix qui se sont révélés, pour Dieu, la voie la plus puissante. C’est là ce que l’homme ne comprend pas – la « sagesse » et la « puissance » de Dieu.
Paul a fait lui-même l’expérience de ce salut dans sa propre vie. Lui qui était un fervent défenseur du judaïsme traditionnel et un persécuteur acharné des chrétiens (Ac 8-9) fut transformé à 180 degrés après sa rencontre avec le Christ ressuscité. Il est devenu l’apôtre de l’Évangile qu’il voulait détruire et s’est donné tout entier à l’implantation de nouvelles Églises chez les païens. Pareille transformation d’un individu est déjà stupéfiante, mais l’Évangile va plus loin : il est capable de modifier le destin d’une communauté, voire d’influencer le cours de l’histoire.
Aujourd’hui encore, cette puissance de l’Évangile demeure. Si la science et la technique ont progressé, la nature pécheresse de l’homme n’a pas changé : la peur de la mort et la culpabilité pèsent toujours sur lui. De nouvelles formes de péché se manifestent, parfois plus sophistiquées, et des structures du mal apparaissent au sein des sociétés. Pourtant,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peuvent laver les péchés, réconcilier les ennemis, reconstruire les relations, et même engendrer une nouvelle culture. C’est pourquoi Paul nomme l’Évangile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 et cette puissance englobe tous les domaines de la vie.
En parlant de « puissance de Dieu », Paul ne vise pas seulement la dimension spirituelle, mais inclut la restauration globale de la personne. Par la Chute, l’humanité s’est séparée de Dieu, ce qui a engendré la mort, le chaos moral, les conflits sociaux, et l’angoisse face à la finitude. Mais l’Évangile recrée l’homme, le délivre de son péché (tant originel que personnel) et l’introduit dans une existence nouvelle où il est réconcilié avec Dieu. Dans ce sens, le salut n’est pas seulement un « passeport pour l’au-delà » ; il façonne la vie présente dans toutes ses dimensions.
Toutefois, Paul souligne que ce salut, promis par l’Évangile, ne s’applique pas automatiquement à tout un chacun. Il précise : « …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La condition sine qua non est la foi. Il ne suffit pas de connaître intellectuellement la mort et la Résurrection de Christ ; il faut les accueillir de tout son cœur, reconnaître que le sacrifice de Jésus est offert pour soi. C’est ainsi que la puissance de l’Évangile devient effective. Tel est le cœur de la foi chrétienne et la loi spirituelle du salut selon Paul.
Le pasteur David Jang rappelle dans plusieurs prédications que la foi est comme « la main qui reçoit un cadeau ». Par la Croix, Dieu a déjà préparé pour nous le salut. Mais pour qu’il devienne personnel, il faut s’en saisir par la foi. Si quelqu’un offre un cadeau et que l’on refuse de le prendre ou qu’on le soupçonne de n’être pas authentique, alors ce cadeau ne nous sert à rien. Il en va de même pour l’Évangile. Peu importe l’ardeur avec laquelle l’Église le prêche : si les gens ne l’acceptent pas dans la foi, ils n’en retireront aucun bénéfice. Mais s’ils s’en emparent avec foi, la grâce du salut devient leur réalité, transformant leur vie et leur donnant la vie éternelle.
« Au Juif premièrement, puis au Grec » : l’idée est que le même salut s’étend de façon identique à tous. Dans l’histoire de l’Église apostolique, on voit bien que Samaritains, officiers romains, eunuques éthiopiens ou philosophes grecs ont eux aussi reçu l’Évangile (Ac 8, 10, 17, etc.). Le projet de Dieu n’établit pas de discrimination : telle est la puissance de l’Évangile, en activité aujourd’hui encore.
Si Paul pouvait tenir fermement un message comme la Croix – jugée « scandaleuse » par les Juifs et « stupide » par les Grecs –, c’est parce qu’il avait été le témoin direct du changement radical opéré par l’Évangile en lui-même et chez de nombreux autres. Il a vu des pécheurs se repentir, se tourner vers une vie sainte, des personnes en inimitié devenir frères dans l’amour, et des communautés unies malgré leurs différences d’origine, toutes issues de la puissance de l’Évangile. C’est pourquoi, quelle que soit la culture triomphante de Rome, la fierté intellectuelle de la Grèce ou le judaïsme attaché à la Loi, Paul était persuadé que rien n’était plus fort que l’œuvre de salut opérée par l’Évangile. Il n’a jamais reculé devant les persécutions.
Aujourd’hui, il nous arrive de perdre courage, surtout lorsque l’Église fait l’objet de critiques du monde. Mais remettons-nous dans le contexte de l’époque de Paul : les premiers chrétiens étaient violemment persécutés, bien plus que nous ne le sommes aujourd’hui, et pourtant l’Évangile s’est répandu à une vitesse inouïe. L’Église, malgré la détresse, a fait basculer l’Histoire. L’Évangile est une force qui transforme le monde à travers l’épreuve. Tant que nous gardons la foi en cette vérité, nous pouvons affirmer, même si l’on nous méprise ou si l’on brandit les prouesses de la science : il n’existe aucun autre moyen de sauver l’humanité et de la guérir en profondeur. Voilà pourquoi la déclaration « c’est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reste, aujourd’hui encore, si vitale.
III. La justice de Dieu et la vie du juste : « Le juste vivra par la foi »
Paul conclut, dans Romains 1.17, en précisant l’élément-clé : « En effet, la justice de Dieu s’y révèle par la foi et pour la foi, selon qu’il est écrit : Le juste vivra par la foi. » Ce verset est devenu le slogan central de la Réforme, et il renferme l’essentiel de la doctrine du salut chrétien. L’apôtre y affirme que l’Évangile rend manifeste la « justice de Dieu » (Righteousness of God), grâce à laquelle le pécheur est justifié, et que ce processus se fait « par la foi ».
Lorsque nous entendons le mot « justice », nous pensons souvent à ce qui est juste ou non. Mais, dans la Bible, la « justice de Dieu » prend un sens théologique plus large. L’homme, confronté à la Loi, se découvre pécheur ; il est incapable de satisfaire parfaitement aux exigences de la Loi. Aussi est-il condamné (Rm 3.10 et suivants). Or, Dieu, dans sa grâce, a envoyé Jésus-Christ pour porter la peine de notre péché sur la Croix, ouvrant ainsi un chemin de justification. C’est ce don de Dieu – qui dépasse le pouvoir humain de devenir juste – que Paul appelle « justice de Dieu ». Il s’agit de la justice de Dieu « imputée » au pécheur en vertu de l’amour rédempteur de Dieu.
Dans Galates 3.10, Paul écrit : « Car tous ceux qui s’attachent aux œuvres de la Loi sont sous la malédiction. » La Loi a pour fonction de révéler le péché, mais elle ne propose pas de remède qui permettrait à l’homme de s’en libérer. Pire encore, l’homme, en constatant son incapacité à l’accomplir, se voit condamné plus clairement. C’est pourquoi Paul, dans Romains et Galates, met en avant l’échec de toute tentative de justification par l’accomplissement de la Loi. Seule la « justice de Dieu », venue par Jésus-Christ, peut arracher le pécheur à sa condamnation. Voilà précisément ce que signifie : « L’Évangile révèle la justice de Dieu. »
Le pasteur David Jang répète souvent que l’Évangile est « la justice que Dieu a préparée pour l’homme, en donnant son Fils unique ». Romains 5.8 déclare : « Dieu prouve son amour envers nous : lorsque nous étions encore des pécheurs, Christ est mort pour nous. » Par cette œuvre de rachat, Dieu démontre la perfection de sa justice. Cette justice de Dieu se reçoit « par la foi, pour la foi » : de bout en bout, elle est saisie uniquement par la confiance en Dieu. C’est tout le message du Nouveau Testament.
À ce stade, Paul cite Habacuc 2.4 : « Le juste vivra par la foi. » Au temps du prophète Habacuc, le peuple juif était menacé par l’invasion de Babylone. Pourtant, Dieu le rassure : le juste ne vivra pas par sa force ni par ses œuvres, mais par sa foi. Paul transpose cette prophétie à la situation du péché et de la mort qui règnent dans le monde. De la même manière que Babylone n’a pas duré éternellement, l’Empire romain ne saurait être éternel ni échapper au jugement. Malgré la puissance du péché, ceux qui sont déclarés justes par la foi participent à la vie éternelle sous la protection de Dieu.
Cette parole, « Le juste vivra par la foi », a bouleversé Martin Luther et est devenue un cri de ralliement de la Réforme. Au milieu de la corruption de l’Église du Moyen Âge, notamment avec la vente des indulgences, Luther a lutté contre l’idée que l’on pourrait se justifier par des œuvres ou des mérites humains. En étudiant Romains 1.17 et l’Épître aux Galates, il en est venu à prôner les principes du « Sola Fide » (la foi seule), « Sola Gratia » (la grâce seule) et « Sola Scriptura » (l’Écriture seule). Aucun mérite, aucune œuvre n’est capable de produire le salut : seule la justice de Dieu, reçue dans la foi en Jésus-Christ, nous justifie.
C’est toujours valable de nos jours. Certains pensent encore qu’on peut être sauvé simplement en menant une vie exemplaire, ou bien en accumulant des œuvres religieuses et des dons. Paul demeure catégorique : l’homme n’est pas justifié par la Loi ou par ses mérites, mais seulement par la foi. L’expression « il vivra » se réfère non seulement à la survie physique dans ce monde, mais aussi à la vie éternelle, la paix avec Dieu, et finalement à la gloire du Royaume céleste. Tel est le privilège réservé au « juste », c’est-à-dire à celui qui est justifié par la foi.
Paul ajoute que cette justice se révèle « de foi en foi », pour souligner que la foi est nécessaire d’un bout à l’autre. Nous commençons notre vie chrétienne par un acte de foi, et nous la poursuivons de foi en foi, jour après jour. Bien sûr, le péché reste aux aguets et cherche à nous faire tomber, mais le croyant ne se définit plus par la Loi ni par ses échecs : il se définit par la justice que Dieu lui a donnée. Ainsi, chaque fois qu’il trébuche, il se relève dans la repentance et continue sa marche par la foi.
En outre, « Le juste vivra par la foi » sous-tend toute l’éthique chrétienne. Puisque nous sommes sauvés par la grâce de Dieu, sans aucun mérite de notre part, cela doit nous conduire à l’humilité, à la gratitude et à l’amour de l’autre. Si l’homme pouvait s’enorgueillir de sa propre justice, il aurait vite fait de mépriser les autres et d’en tirer vanité. Or l’Évangile nous montre qu’en dehors de la grâce, nous ne sommes rien. Le croyant justifié est donc appelé à se souvenir qu’il n’est pas plus méritant qu’un autre et à accueillir son prochain, lui aussi pécheur, avec amour.
Le pasteur David Jang met en garde contre l’infiltration, au sein de l’Église, d’une mentalité légaliste qui pousserait les chrétiens à se juger mutuellement sur la base de leurs actes. Il nous rappelle : « Nous sommes devenus justes par le sang de Jésus versé à la Croix ; pourquoi donc nous entre-déchirer et nous condamner ? » La leçon de « Le juste vivra par la foi » nous ramène sans cesse à la source de notre justification : l’œuvre expiatoire du Christ. C’est là le noyau que l’Église doit protéger, encore aujourd’hui.
Au final, l’idée de Paul est limpide : la justification ne vient pas de nous, mais du sacrifice de Jésus-Christ à la Croix. Nous saisissons ce don par la foi, et, ainsi, nous devenons justes. Aussitôt, cette foi se déploie dans toute la vie quotidienne : « De foi en foi ». Le salut ne se réduit pas à un événement ponctuel ; il s’agit d’un processus où l’on grandit, fortifié par la foi, jusqu’au terme de notre vie terrestre.
Par ailleurs, cette « justice de Dieu » peut aussi se comprendre comme « la fidélité de Dieu ». Tout le raisonnement de Paul dans l’Épître aux Romains montre que Dieu, en envoyant le Messie promis, Jésus, tient parole et se révèle juste et fidèle. Il fait grâce au monde entier, Juifs et non-Juifs, conformément aux prophéties de l’Ancien Testament. Sa justice n’est pas seulement punitive, elle est surtout salvatrice : par amour, Dieu lui-même a payé le prix du péché. Cette justice salvatrice dépasse l’entendement humain et suscite chez le croyant une reconnaissance infinie.
Telle est la grâce dans laquelle nous demeurons. Et nous y participons par la foi. Romains 1.17, qui ouvre cette grande épître, aborde déjà la condition pécheresse de l’homme, le jugement de Dieu, la rédemption par le Christ et la justification par la foi. L’Épître aux Romains est considérée comme un abrégé magistral de toute la doctrine chrétienne, source d’inspiration spirituelle et intellectuelle pour des générations de théologiens et de fidèles. Comprendre « Le juste vivra par la foi » revient pratiquement à poser la clé qui ouvre la porte de la foi.
Cette vérité n’est pas qu’une notion abstraite. Paul a pu se tenir sans crainte devant Rome et affirmer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parce qu’il avait la certitude du salut par la justice de Dieu. Il avait rencontré personnellement la puissance de la miséricorde divine et en avait vu les effets transformateurs. Cela lui conférait une assurance inébranlable, dépassant de loin tout ce que Rome pouvait offrir.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souvent la portée de Romains 1.16-17, tant dans le cadre historique de la Réforme que pour la situation contemporaine de l’Église. Le slogan « Sola Fide » (la foi seule) nous rappelle que le salut dépend entièrement de la grâce de Dieu, manifestée en Jésus-Christ. De là découlent l’humilité, l’action de grâce et l’engagement dans l’amour. Aussi le croyant peut-il expérimenter une liberté, une joie et une assurance incomparables. Celui qui est passé du statut de pécheur à celui de juste témoigne déjà de la grâce immense de Dieu. Dès lors, comment pourrait-il avoir honte de l’Évangile ? Il va plutôt l’annoncer, s’y conformer et servir son prochain par amour.
« Le juste vivra par la foi » : que Babylone attaque, que Rome persécute ou que les péchés pullulent aujourd’hui, le juste persévère et puise sa vie dans la foi. C’est l’ultime réponse que Dieu nous offre, et cette réponse ne peut être ébranlée. Car notre assurance ne repose ni sur notre volonté ni sur notre force, mais sur « la justice de Dieu » produite par l’expiation de Jésus-Christ à la Croix. C’est la foi qui nous justifie et nous fait vivre sous le regard de Dieu, jusqu’à la vie éternelle. Voilà l’essence même de toute l’Épître aux Romains et, par-delà, de tout l’Évangile. C’est là, selon Paul, le « pilier » que l’Église et les croyants doivent garder.
En fin de compte, Romains 1.16-17 véhicule trois messages essentiels. Premièrement, l’affirmation de Paul : « Je n’ai pas honte de l’Évangile », nous appelle à demeurer fermes, convaincus que l’Évangile seul est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quels que soient les pressions et les défis du monde. Deuxièmement, puisque l’Évangile est «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quiconque croit », l’Église doit en faire sa priorité absolue : rien d’autre n’apportera la solution au péché, à la mort et aux questions existentielles. Troisièmement, la « justice de Dieu » se révèle dans l’Évangile ; elle nous est imputée par la foi, nous rendant justes et nous conférant la vie éternelle : c’est le sens de « Le juste vivra par la foi », accompli aujourd’hui encore.
Ce passage de Romains 1.16-17, synthétique et puissant, contient l’essentiel de la théologie du salut. Martin Luther raconte qu’en le comprenant, il eut l’impression de voir « la porte du paradis s’ouvrir ». Pour nous aussi, ce verset peut être un déclic spirituel majeur. Si nous y adhérons, si nous n’avons pas honte de l’Évangile et si nous vivons par la foi, le monde découvrira où se trouve le vrai salut.
Enfin, « Le juste vivra par la foi » ne concerne pas seulement le salut individuel : c’est un message qui s’adresse à l’Église et à toute l’histoire humaine. Chaque fois que l’Église s’est rappelé cette vérité, elle a su se réformer et se renouveler. Paul, face à l’Empire romain ; Luther, face aux abus de l’Église médiévale ; et nous, aujourd’hui, face à la culture séculière, savons que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sont l’unique puissance du salut. Comme le souligne le pasteur David Jang, c’est uniquement en revenant à cet Évangile que l’Église retrouve sa vitalité et peut remplir sa mission de sel et de lumière pour le monde. Lorsque les croyants proclament l’Évangile avec assurance, reçoivent la justice de Dieu par la foi et en vivent, ils portent les fruits du Royaume de Dieu dans ce monde.
Nous pourrions encore développer bien des aspects de Romains 1.16-17, tant ils sont riches. Retenons-en la leçon fondamentale : ne pas avoir honte de l’Évangile, reconnaître en lui la puissance de Dieu pour notre salut, et saisir par la foi la justice divine. Alors, justifiés, nous vivrons non par nos propres mérites ou par nos vertus, mais grâce au sang versé et à l’amour infini de Dieu, devenant une « nouvelle création ». Tel est le sens profond de Romains 1.16-17 et le cœur de la vérité que l’Église, de génération en génération, confesse.
Souvenons-nous-en chaque jour : « Le juste vivra par la foi. » Et cette foi n’est autre que notre confiance en la justice de Dieu manifestée à la Croix. C’est là que se trouvent notre espérance et notre vie éternelle. Ni la pensée humaine, ni la puissance d’un empire, ni l’air du temps ne peuvent remplacer cet Évangile. Puissions-nous tous, en tant que chrétiens d’aujourd’hui, nous tenir fièrement devant lui, sans en rougir, en reconnaissant qu’il est l’unique vérité qui sauve. C’est notre privilège et notre vocation.
接下来,保罗在《罗马书》1章17节进一步阐明核心结论:“因为神的义正在这福音上显明出来,这义是本于信,以至于信,如经上所记:‘义人必因信得生。’”这节经文既是宗教改革的基石,也堪称基督教救恩论的精髓。保罗指出,福音中“显明了神的义(Righteousness of God)”,使罪人得以称义,而整个过程是“本于信,以至于信”,即完全凭信心而成。
さてパウロはローマ1章17節でさらに核心的な結論を提示します。「福音には神の義が掲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至らせるの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この節は宗教改革の中心的モットーとなり、キリスト教救済論のエッセンス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パウロは福音のうちに「神の義(Righteousness of God)」が現れると語ります。そしてその義が、罪人である人間を義とするのであり、そのプロセスは「信仰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るのだと強調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