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장재형목사

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힘주어 선언할 때, 그는 단순히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라는 웅장한 세계의 한가운데 서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는 믿음의 담대한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쓸 당시, 로마제국(Roman Empire)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단히 찬란한 영화와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세속의 힘 앞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는 등 수많은 핍박을 감내해야 했음을 생각해 보면, 그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시작하는 그 선언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의지의 표명이며 신앙적 고백인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3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때로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당대의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사회적 하층민, 밑바닥 인생으로 취급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는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고, 로마 제국 안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도시에 정착해 있던 크리스천들은 사회적 권력이나 재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사람들의 조롱과 무시, 때로는 직접적인 박해까지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만물의 찌꺼기”가 된 이들이 실상은 보화를 담은 질그릇과 같고(고후 4:7),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임을 역설합니다.

로마 역시 고린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권세와 화려함을 자랑하던 제국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흔적은 오늘날에는 이천 년 전의 유적과 부서진 잔해만으로 남아 있지만, 그 잔해를 보아도 과거에 얼마나 찬란하고 위세가 대단했는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방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고 융합해 온 로마의 한가운데서, 피가 흐르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외친다는 것은 극도로 부끄럽거나,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어 보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선포함으로써, 아무리 화려하고 강력한 제국이라 할지라도 결국 모든 사람은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이토록 담대할 수 있었던 근원은 어디일까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고(행 9장),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죄인된 인간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라고 확신했고, 또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비록 부끄러움과 치욕스러운 순간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기 때문입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이 로마서 1장 16-17절에 담긴 중요한 진리를 강조해 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가치관, 물질적 풍요와 지적 자랑, 혹은 과학기술과 문명의 빛 아래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정말 현대인들에게도 효력이 있는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정말 믿을 만한가?”라는 세상의 질문에, 어떤 이들은 주눅 들고, 심지어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사실조차 숨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히 가르쳤듯, 로마의 찬란한 문명이나 그 어떤 세속적 영광도 “복음”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시대도 소위 ‘지혜로운 헬라인’과 같이 세련된 지적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복음, 특히 십자가와 부활을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유대인의 관점에서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있듯, 어떤 문화나 전통에서는 여전히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함으로써(고전 1:22-23), 자기 시대의 지배적 가치관과 철학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복음이야말로 죄인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고 보았고, 어떠한 조롱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신앙적 결의를 분명히 표현했습니다.

이렇듯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는 단순한 자존심 이상의 신앙적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이 서슬 퍼런 로마와 철학적 자부심이 강한 헬라인들, 그리고 전통에 얽매여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동일하게 외친 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현대인도 재물, 학문, 권력, 혹은 문화적 자랑을 앞세우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닙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 세상이 영적 익사 직전이라면, 우리가 내민 “복음”이라는 동아줄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확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장재형목사 역시 여러 설교와 저술에서, 교회가 이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도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전해야 함을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먼저 꺼냈을까요? 그것은 로마와 같은 대제국 한복판에서도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십자가 사건이지만,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류 전체의 운명을 바꿀 만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봤을 때 로마도, 헬라의 지혜도, 유대인의 전통도 이 복음을 통한 구원 없이는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해야 할 것이요, 결코 감추어 둘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상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외쳤던 인물들은 시대적 상황을 넘어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복음을 위해 순교하면서도 자랑스럽게 믿음을 지켰고, 종교개혁가들은 중세의 거대한 제도권에 맞서 복음의 진리를 외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많은 선교사들 역시 어려운 현장 속에서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하며 수많은 영혼을 주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바울의 시작은, 오늘날 우리 각 사람에게도 강력한 도전이 됩니다.

물론 우리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세상의 학문, 문화, 예술, 기술 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들 가운데 선한 것은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간 구원”에 있어서는 결코 복음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바로 이 구원 문제, 영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로마서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인간적 방법이나 자랑,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결단코 이룰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오직 복음에 달려 있다는 점을 도무지 감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나 오늘날은 과학과 의학,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지식’이 풍성한 시대입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급속도로 발전한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전에 없이 편리하고 빠른 생활 양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공허함, 죄의식,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풍성해질수록, 또 정신적으로 복잡해질수록 영혼의 근본적 문제는 더욱 도드라지기도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궁극적 물음들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기술이 진보해도,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상황을 볼 때,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한 핵심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은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거나, 시대착오적이고 학문적이지 못하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눈에는 이 복음이야말로 궁극적 지혜이며, 무너져가는 인류가 붙들고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장재형목사 또한 여러 차례 설교와 저서에서, 현대의 최첨단 기술이 죄인 된 인간의 구원을 이루거나 영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해 줄 수 없음을 역설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가장 절박한 해답을 등지고 숨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예로 들며 “너희가 만물의 찌꺼기”라고 했듯,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연약해 보이고 별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현실적 영향력이 적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각종 비난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교회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근본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지키고 살아내며 담대히 전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외에는 구원이 없고, 복음 외에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잊지 않을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로서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고, 성도는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진리를 붙들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을 “왜냐하면(For)”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데, “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논리적 근거가 바로 뒤이어 제시됩니다. 즉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진술이 그것입니다. 복음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죄 가운데 죽어가는 인류를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바울은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모든 이에게 임하는 구원의 소식이기에 바울은 온 세상을 향해 이 소식을 전하고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오늘날에도 바울의 이 태도를 본받아 세상이 아무리 찬란해 보여도, “결국은 복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합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이천 년 전에만 국한된 옛 문서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오늘날 읽어도 여전히 생생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문화와 학문이 아무리 발전해도 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죽음의 공포는 진화론적 설명이나 의학적 기술만으로는 근본적 해소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허무와 죄의식으로 인해 방황하며, 그것을 해결해 줄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과 같은 자세로, 이 세상 한가운데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소주제에서 우리가 함께 붙들어야 할 핵심 메시지입니다.

Ⅱ.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의 능력

바울은 이어서 로마서 1장 16절 하반절에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선언합니다. 복음이 단지 ‘좋은 이야기’나 ‘감동적인 스토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Power)이라는 것이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학문이나 철학, 혹은 제도나 정치권력도 하지 못하는 일을 이 복음이 해낸다는 확고한 믿음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강력하게 강조하는 배경에는, 당시 로마 사회가 지닌 지적·문화적 자부심과 더불어, 여전히 많은 이방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환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기죽지 않았습니다. “로마를 포함해 온 세상이 죄로 인해 멸망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구원(Salvation)은 단순히 “지옥에 안 가고 천국에 간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재창조되는 사건입니다. 죄와 단절, 죽음과 단절, 그리고 사탄의 종노릇으로부터의 해방이 포함되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인류가 간절히 필요로 하던 것이며, “복음”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특히 바울은 이 구원의 은총이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밝힙니다. 그는 유대인 출신으로서 메시아를 기다려온 역사를 알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으며, 구원의 언약 역시 이스라엘을 통해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지경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헬라인, 곧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구원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이 결코 특정 민족이나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복음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여러 차례 암시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전히 열리게 된 새 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이 부분을 해석하며, 구원은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는 복음이라는 점을 자주 설파해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복음을 접하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응답하면 구원의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문화, 인종, 사회적 지위, 지적 수준을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초대교회의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실제로 각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복음이 증거되고, 다양한 이방 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역사는 복음이 가진 능력이 세속의 장벽들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어떠한 방식으로 “능력”을 발휘할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능력”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대속의 죽음,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죄 아래 있던 인간을 살리는 핵심이요, 능력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였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하였지만, 결국 바울은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세상의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역사에介入(개입)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한 것입니다. 인간의 잣대로 보면, 권력과 기적, 혹은 철학적 지혜와 탁월한 사유가 구원을 가져다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비하와 희생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이 가장 강력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지혜”이며 동시에 “능력”입니다.

바울은 이 구원 사건을 자신의 삶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는 본래 열렬한 유대교 전통 수호자였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행 8-9장).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인생관과 세계관으로 전환되었고,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박해하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이 180도 바뀌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통해 그렇게 변화되었고, 더 나아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아 세상 곳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이렇듯 복음은 단순히 한두 사람의 인생을 바꿀 뿐 아니라, 공동체와 역사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복음의 능력은 유효합니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죄성은 변하지 않고, 죽음과 심판의 문제가 우리 앞에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문화가 다원화되었다고 해도 인간 내면의 공허와 죄책, 악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명이 발달할수록 죄의 형태가 교묘해지고 구조적 악이 복잡해지는 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희생과 부활 사건은, 사람들의 죄를 씻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심지어 공동체와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표현할 때, 여기에는 영적인 면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회복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혼은 병들고, 그 결과로 도덕적·윤리적 혼란, 사회적 갈등,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새로 태어나게 하고, 자범죄뿐 아니라 원죄의 사슬도 끊어내어 새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해 줍니다. 그런 맥락에서 “구원”이 단지 ‘내세적 보장’만을 뜻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이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효력이 생긴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믿는 자에게”라고 전제 조건을 달았습니다. 믿음으로 화답할 때에야 비로소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구원을 가져옵니다. 즉, 인간 편에서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공로가 나를 위한 대속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구원의 능력이 우리 안에 실제로 적용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바울이 말한 복음의 능력의 작동 원리입니다.

장재형목사 역시 여러 설교에서, 믿음이란 “선물을 받는 손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준비해 두셨으나, 그것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내 것으로 삼으려면, 내가 그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물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지 않거나 의심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그것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는 순간, 구원이라는 선물이 내 것이 되어, 나를 새롭게 만들고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게 됩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는 말은, 구원이 특정한 민족적·문화적 장벽을 초월하여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초대교회 시대를 돌아보면, 사마리아인, 로마 군인, 에티오피아 내시, 헬라 철학자 등 다양한 계층과 민족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행 8장, 10장, 17장 등).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차별”이 아니라 “보편성”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힘이고, 이 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와 복음을 끝까지 붙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구원의 능력”을 자기도 몸소 체험했고, 타인들에게서도 반복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변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되며, 원수 같던 이들이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적 기준으로는 도무지 화합될 수 없는 다양성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그는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로마가 거대해 보이고, 헬라 철학이 뛰어나 보이며, 유대 종교가 율법을 자랑한다 해도, 이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 곧 복음을 통해 나타나는 구원 역사를 전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때로는 교회 현실이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모습을 접할 때 낙심하거나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살던 시대를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크리스천들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박해와 조롱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복음이 퍼져나갔고, 교회가 뿌리내리고 확장되었습니다. 복음은 고난을 뚫고 역사를 바꾸는 능력입니다. 우리 역시 이 믿음을 지킬 때, 세상이 아무리 부정적으로 말해도, 또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원하고 치유하는 길이 오직 복음에 있음을 선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바울의 선언이 오늘날에도 힘있게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Ⅲ. 하나님의 의와 의인의 삶: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제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에서 더욱 핵심적인 결론을 제시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종교개혁의 핵심적 모토가 되었고, 기독교 구원론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의가 죄인 된 인간을 의롭게 만들며, 그 과정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의(義)”라고 할 때, 흔히 ‘옳고 그름의 기준’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훨씬 더 깊은 구원론적 의미를 함축합니다. 인간은 율법 앞에서 모두 죄인임이 드러났고,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를 스스로 이룰 수 없어 모두 정죄 아래 놓여 있습니다(롬 3:10 이하).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심으로,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을 여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행위로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을 초월해서, 오직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가(Imputation)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 주기는 하지만, 인간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의 실존을 더 분명히 보여 줄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만이 죄인을 살릴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의 요지입니다.

장재형목사도 여러 차례의 설교에서, 복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선물하신 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편에서 전적으로 이루신 이 구속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의 의’로서 완전한지를 설명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 의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곧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만 수용된다는 것이 신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약의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가 바벨론 제국의 침략 위협 속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엄중한 묵시를 받았던 것처럼, 이제 바울은 죄와 죽음의 권세가 왕노릇하는 이 세상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망할 운명에 놓여 있던 것처럼, 로마 제국 역시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성해 보이거나 죄가 관영해 보여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의인”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선언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크게 깨닫고 외쳤던 구절이기도 합니다. 루터는 중세 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같은 타락한 관행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가르침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인간의 공로나 제도로는 결코 구원이 이뤄지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의를 믿음으로 받을 때 의로워지고,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구원받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의식이나 헌금 같은 봉사로 의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의인은 율법이나 인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살리라”는 말은 단지 물리적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샬롬을 누리며, 최종적으로는 천국의 영광에 이르는 삶을 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 안에서 “의롭게 된 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구절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믿음의 기초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달려 있으며, 인간은 그 은혜에 대해 계속해서 “믿음으로” 응답하고 순종해 나가야 함을 시사합니다. 신앙생활은 어떤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믿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믿음 위에 또 믿음을 더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우리의 삶에 여전히 도전해 올 때도 있지만, 의롭게 된 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붙들고 다시 회개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또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선언은 기독교 윤리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과 감사, 그리고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선해지고 의를 이루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며, 다른 이들을 멸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복음은 “너희가 아무것도 아닌데, 은혜로 구원받았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차별하기보다, 오히려 은혜에 감사하며 자기 자신처럼 죄인인 이웃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장재형목사도 이 대목에서, 교회 안에 때로는 율법적 사고가 침투하여 성도들이 서로의 행위를 평가하고 정죄하는 문제를 지적하곤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의롭게 된 자들인데, 어찌하여 서로를 함부로 정죄하고 율법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느냐”는 반문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붙들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대속’과 ‘그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의로워졌음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지켜야 할 핵심 진리입니다.

결국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의로움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주어지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내 것으로 받는 과정이 믿음이며, 그렇게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말은, 동시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구원은 단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삶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또한 하나님 편의 신실하심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로마서 전체 문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약속을 지키셨고,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드러내신다고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약속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성품, 신실하심을 포괄합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신 것이야말로, 우리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 안에서 삽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그 은혜에 참여합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 1장 17절을 서론으로 삼아, 뒤이어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본격적으로 풀어 나갑니다. 전통적으로 로마서는 기독교 교리의 정수로 불리며,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영적 · 지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이 대원칙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신앙의 문을 열어 젖히는 열쇠와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결코 머리로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바울이 담대히 로마 제국을 향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외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에 대한 철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통해 경험한 용서와 은혜, 그리고 능력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실제적 체험이었고, 그 체험이 로마 제국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세상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자각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로마서 1장 16-17절이 가지고 있는 종교개혁적 의미와, 동시에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을 자주 강조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선언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데서 나오는 겸손과 감사,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기꺼이 헌신하는 열매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기쁨, 그리고 당당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뀐 사람은 이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증거가 되며, 그 결과 세상 앞에서 부끄럼 없이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벨론이 침략해 온다 해도, 로마 제국이 강력하게 박해한다 해도, 그리고 오늘날 온갖 혼란과 죄가 관영해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궁극적 해답입니다. 그리고 이 답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우리 자신의 결단이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그 의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살리며, 영원한 생명을 향해 인도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힘주어 가르치려는 복음의 핵심이며, 모든 교회와 성도가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둥입니다.

결국 로마서 1장 16-17절에 담긴 메시지는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요약됩니다. 첫째,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도 어떠한 세상적 압박 속에서도 복음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고 담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와 죽음, 영원 문제를 오직 복음이 해결함을 믿고, 교회가 이를 선포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셋째,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가되므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영생에 참여한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서 1장 16-17절은 복음의 본질과 능력, 그리고 믿음을 통해 의로워지는 구원론의 핵심을 간략하면서도 강력하게 압축해 놓았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간증처럼, 이 말씀을 깨달은 순간 “마치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영적 깨달음의 불꽃이 반짝이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가 될 때, 세상은 비로소 진정한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개인 구원의 문제를 넘어, 교회와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이 진리를 붙들 때마다 갱신되고 개혁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제국 속에서, 루터가 중세 타락한 종교 제도 속에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세속 문화의 도전 가운데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붙드는 한 가지, 그것이 바로 복음이며, 십자가와 부활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장재형목사가 여러 강의와 문헌에서 거듭 상기시키듯, 이 복음 앞에 우리가 설 때 비로소 교회는 생명력을 회복하고, 세상을 향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꺼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하며,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그 의를 따라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의 귀한 열매가 이 땅에서 맺히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17절의 풍성한 내용을 다 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핵심은 분명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 그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 그리고 그 구원이 믿음으로 인해 우리에게 실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로워진 자는 결코 율법적 공로나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 16-17절이 주는 궁극적인 메시지이며, 교회가 대대로 붙들어온 진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기억합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그 믿음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고 감사로 받는 행위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과 생명이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사상도, 제국의 권력도, 시대의 조류도 대체할 수 없는 이 복음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서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의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에베소서의 전신갑주 – 장재형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늘 강조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 자체이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생명의 근원이기에, 진리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전신갑주를 준비하는 첫걸음이라 역설한다. 에베소서 6장 후반부에 “전신갑주”가 소개되는데, 그중 첫 번째인 “진리의 띠”를 언급하면서 그는 “진리는예수 그리스도 그분이기에,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흔들리지 않을 가장 근본적인 토대”라고 설명한다. 다른 무장을 아무리 잘해도 진리를 놓치면 중심이 무너져 버리므로, 진리 없이는 우리의 신앙이 온전히 선 자리에 있을 수없음을 시사한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며, 여기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신앙의 근간을 세우는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에베소서가 언급하는 “전신갑주”는 겉모습만을 장식하는 무장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단단히 지키기 위한 영적 무장이다. 그는 “진리의 띠”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정의하며, “항상 진리를 몸에 지니고 있는 상태가 곧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출발”이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묶는 열쇠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곧 성경 전체가 말하는 구원의 계획을 중시한다. 이는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완성된 복음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묵상하고 소화해, 우리의 삶에 체화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소가 위가 여러 개 있어 되새김질하듯이, 말씀도 계속반복해 묵상해야 진리가 우리 삶에 스며들고, 실제로 행동에까지 이어진다”는 비유 역시 그가 자주 들려주는 말이다.

장재형 목사는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일회성으로 흘려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진리를 끊임없이받아들이고 되새김질하여,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신앙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부지런히 말씀을 소화할 때, 우리의 사고와 언행이 서서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반영하게 되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또한 진리를 붙드는 이가 사탄의 유혹 앞에서도 견고하다고 말한다. 사탄의 공격 방식은 결국 거짓과 의심을부추겨,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느냐?”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통해 흔들어 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설명이다. 예수님조차 광야에서 3대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문구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로 맞서 싸우신 것처럼, 우리 역시 ‘기록된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장재형 목사는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진리를 붙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세 가지 정도를 제시한다. 첫째, 말씀을 늘 곁에 두고 깊이묵상하며, 그 말씀이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듣고 배운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칠 때, 비로소 진리가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리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는복음의 힘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을 자주 예화로 든다. “복음 안에 담긴 진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었으며, 그 진리가 결국 교회를 살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복음이 갖는 진리의 절대성은 흐릿하게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 위에 교회가 서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진리의 핵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이기둥을 흔들 수 없다.

결국 에베소서 6장에 나온 전신갑주 중 첫 번째 무장인 “진리의 띠”는 영적 전투의 기초다. 군인이 벨트를 하지 않으면 무장 전체가 흐트러지듯, 진리를 놓치면 다른 모든 것도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의 진리를 확고히 붙들고 있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올바른 열정을 품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
장재형 목사는 “의의 흉배”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해설한다. 흉배가 심장을 보호하듯, 우리의 내면과 마음을 굳세게 지키는 힘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간절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다스림을 갈망하는 이들은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중심을 쉽게 잃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적 의미와 동시에 현재적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미래적 하나님 나라’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이미 임해 있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로 들며, 과거와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됨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미와 아직 사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실현은 아직 미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 놓인 우리는 소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현재의 삶에서도 그 통치를 경험하기 위해 분투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소망이 사탄의 주된공격 목표가 된다고 강조한다. 즉, ‘내일이 없고, 너희가 가는 길은 허망하며, 하나님의 계획 따위는 없다’는 의심을 심어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수법이다.

그는 바로 이 점에서 “구원의 투구”가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머리가 상징하는 ‘생각’이 하나님 나라에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사탄은 얼마든지 절망과 낙심의 불화살로 관통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예로 들어, 그들이 광야에서 자꾸만 애굽을 그리워하고 불신과 불평에 사로잡히자 길이 험난해졌음을 지적한다. 반대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을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와 인도가 이어졌다.

장재형 목사는 소망을 붙드는 실천 방법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에 대한 약속을 성경에서 계속 상고하고 상기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다스림이 실제로 임하는 것’을 체득해야 한다. 셋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선배들의 간증과역사 속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인하며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소망은 공고해지며, 사탄이아무리 ‘네 미래는 없다’고 부추겨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그는 “평안의 신발”이 곧 복음 전파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다주는 힘이며, 이를 위해 평화롭게 전하는 복음의 사역은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온유함, 겸손,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복음 전파야말로, 사탄이 가장 꺼려하는 일이라고역설한다. 결국 복음은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이며, 이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들을 사탄은쉽사리 무너뜨리지 못한다.

나아가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구절을 빗대어,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를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과 비교하며, 아무리 광야가 길고 험해도, 결국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현대의 교회가 이 역사를 기억한다면, 지금 아무리 사회가 어둡게 보여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믿음의 방패와 시험의 문제
에베소서 6장 16절이 말하는 “믿음의 방패”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온갖 ‘불화살’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해석한다. 사탄이 쏘아 대는 불화살은 여러 형태를 띠는데, 의심, 유혹, 정체성 혼란, 절망, 인간관계 갈등 등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그에게 따르면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라기보다, 의심과 거짓에 쉽게 흔들리는 상태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정말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 열매를 못 먹게 하셨을까?” 하는 의심으로 미끄러졌을 때, 결국은죄를 범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도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너를 진짜 사랑하실까?’ ‘정말 네가하나님의 자녀일까?’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려 한다.

이런 의심에 맞서는 무기는 무엇일까? 장재형 목사는 첫째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의 확실성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마다 “기록되었으되”로 대적하셨듯이,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견고한 신뢰가 의심과 거짓을 물리칠 핵심 무기라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다. 예수님이받으셨던 시험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으로 시작되었듯이, 사탄은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려 할 때 가장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실하면, 사탄은 쉽사리 그 틈을 비집고들어오지 못한다.

장재형 목사는 시험이 오히려 믿음이 자라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삶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유혹이나어려움은, 우리가 더 깊은 기도와 말씀이 필요함을 깨닫게 만든다. 그가 예시로 드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다.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믿음을 굳게 품고 있었기에, 골리앗이라는 거대 적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물맷돌 하나로 승리했다. 사탄은 우리의 시선을 골리앗의 거대함에만 고정시키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바라보기에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자신이 걸어온 신앙 여정에서, 처음에는 작은 일에도 불안했지만, 점차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체험이 쌓이자, 이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문제도 더는 크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믿음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과 격려를 통해 자라난다는 사실을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시험의 시기일수록 공동체가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 불화살을 감당하기가 더 어렵기때문이다. 서로 믿음을 확인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상호 확인하며 기도해 줄 때, 믿음의 방패가 더욱 견고해진다. 믿음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후퇴가 아니라 적극적인 전진도 가능하게 된다. 전쟁에서 방패는단지 막기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열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적진으로 들어가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으면 사탄의 화살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을 위한 주도적 행보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성령의 검과 전신갑주에 관한 실천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무장 중 하나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특별히강조한다. 앞선 무장들이 주로 방어적 역할을 한다면, 성령의 검은 영적 전쟁에서 적을 능동적으로 무너뜨리는 공격 무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 아래 상황에 맞게 선포되고 적용될 때에야 비로소 예리하게 작동한다.

그는 이 성령의 검을 제대로 휘두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읽다 보면, 성령께서 때마다 특정 구절을 떠올리게 하시거나 우리의 마음을 찌르시는데, 그때 곧바로 순종하며 말씀을 실행할 때 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둘째,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잘못 적용하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상처 주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근거로 말씀을적용하면, 이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회개로 이끄는 ‘생명의 칼’이 된다. 셋째, 기도와 훈련을 통해 말씀을 익혀야 한다. 군인이 아무리 좋은 검을 들고 있어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듯이, 우리도 말씀을 연구하고 공동체에서나누며 기도로 준비할 때, 검의 효과가 더 커진다.

장재형 목사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라는 구절이 성령의 검을 설명한다고 언급한다. 이 검은 우리 안을 먼저 찌르며, 회개와 정결을 이루게 한다. 자기가 다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타인을 무조건 ‘말씀’이라는 명분으로 휘두르면,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검이 아니라 ‘폭력적인 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먼저 자기 성찰과 회개를 거쳐야만 제대로 된 빛을 발한다.

결국 전신갑주는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맞물려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말한다.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균형이 깨진다. 예컨대, 믿음의 방패가 단단해도 구원의 투구가 없어 소망을 잃으면, 머리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진리를 알지만 의를 향한 갈망이 식어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영적 싸움에서 쉽사리 무기력해진다.

그는 이 전신갑주를 실제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 세 가지 영적 훈련을 제안한다. 첫째, 매일 정해진 시간을 기도에할애하라는 것이다. 그 시간에 찬양과 말씀 묵상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에 순종하는 노력을 하라. 둘째, 성경을 ‘암기’ 차원을 넘어 실천 적용으로 연결지으라는 것이다. 하루 한 구절씩이라도 상황에 맞춰 상기하고실행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공동체 안에서 간증과 피드백을 나누라는 것이다. “오늘 나는 어떤 유혹을 맞닥뜨렸고 어떻게 말씀으로 이겨냈는가?”를 서로 점검해 줌으로써 전신갑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을 전신갑주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믿음의 방패(믿음), 구원의 투구(소망), 의의 흉배와 복음 전파의 열심(사랑)이 균형 있게 돌아갈 때, 사탄의 거짓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병자를 고치고, 죄인을 영접하시며, 십자가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하셨을 때, 이는 그대로 성령의 검이 되어 사탄을 물리치셨다고 그는 말한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리와 사랑, 그리고 성령의 역사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와 함께 장재형 목사는 “전신갑주”가 화려한 겉치장이나 무장에 국한되지 않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영적 전쟁은 현실 세계의 시끄러운 투쟁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유혹과 거짓, 절망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면하듯, 깨어있는 기도가 이전신갑주를 계속 유효하게 만든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더 선명히 느끼고, 그때그때 말씀을 적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시험에도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에 대해 장재형 목사가 제시하는 바는, 결국 이 영적 전쟁을 공동체가 함께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듯, 서로를 위한 중보 기도와 격려를 통해, 개인을 넘어 교회 전체가 영적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메시지의 결론부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사는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본받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온갖 시험과 대적의 공격,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겪으셨지만, 진리와 사랑으로 승리하시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다. 우리가 그 길에 동참할 때, 세상은 알아주지 않고 비웃을지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장되며 수많은 영혼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 마지막에서 두기고를 언급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고 덧붙인다. “두기고와 같은 동역자가 없었다면, 바울의 높은 정신과 복음의 진수가 교회에 잘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것이다. 교회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이기에, 복음을 서로 연결해 주는 ‘두기고’들이 곳곳에 세워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리해 보면, 장재형 목사가 에베소서 6장을 통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진리의 중심을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소망하며,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 내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는이룰 수 없으므로, 교회 안에서 서로 세워 주며 동역해야 한다. 나아가 그는 “현실에 휘둘리지 말고 영원을 바라보며, 그 영원한 소망을 오늘의 삶에 적용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아무리 답답해 보여도, 영적 눈을들어 보면 이미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위해 “더 깨어 준비하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교회가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성령 안에서 거룩과 사랑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게 될 때, 영적전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승리란,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성한 열매로 나타난다.

이어서 그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이 자신의 사역의 뿌리가 되고있음을 다시금 언급한다. 어떤 인간적인 공로나 자격이 아닌,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고, 그 은혜를 붙드는통로가 믿음이며, 그 믿음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흔들리지 않을 때,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가보장된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6장에 내포된 비전과 현재 시대의 교회를 잇는다.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 경건 생활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가 연합해 서로 격려하며 전진한다는 뜻이다. “서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말씀을 붙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 비록 가시밭길 같아도 그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의 칭찬을 듣게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결국 에베소서 6장의 요지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어떤 거짓과 절망도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꺾였고, 전신갑주를 두른 하나님의 백성은 이 영적 전투에서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확신이 있으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장재형 목사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교회가 있다면 소망은 살아 있다.” 우리가 전신갑주의 각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서로 사랑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고,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제시한‘구원의 드라마’를 우리의 시대에 재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는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리를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동안 헌신과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교회사와 성경의 역사에서 보듯, 그 희생이 결국은 영광으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싸우되, 사랑의 방식으로싸우고, 진리 안에서 겸손하게 나아가라”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이렇듯 에베소서 6장을 관통하는 전신갑주의 정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복음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든다. 진리에 굳게 서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 내고, 성령의 검을 들고 나아가는 교회는어떤 어둠도 결국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우리의 일상과 교회 역사, 그리고 세상에서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거듭 확신한다.

장재형 목사는 끝으로 이 모든 것이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재차 이야기한다. 교만하기 시작하거나 스스로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전신갑주는 어느새 풀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매일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그 어떤 시험에도 휘둘리지 않을 담대함을 얻게 된다.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신앙 공동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영적 전쟁터임은 분명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승리는 확정된 전쟁이다. 전신갑주를 온전히 갖춘 우리는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과 소망, 그리고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이 있는 한, 교회는 생명력 있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말로 설교를 마무리하곤 한다. 지금도 우리는 이 영적 전투 한복판을 살아가지만, 함께 전진하는 교회와 더불어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걸음을 계속 옮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의 중심 사상이다.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Ralph D. Winter Library에 수백 권의 고품질 미술 도서 추가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에 있는 Ralph D. Winter 도서관에 500권의 고품질 미술 도서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책들은 은퇴한 미술대학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컬렉션 주제에는 회화,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건축, 역사 및 예술 전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양장본으로 상태가 양호합니다.

이러한 미술 도서는 Olivet University의 미술 학생 및 교수진에게 제공될 예정입니다. Olivet School of Art & Design의 부학장이자 미술 교수인 Zimou Tan은 이러한 책이 OSAD의 미술 프로그램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OSAD를 위한 완벽한 시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새로운 도서들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적 자료와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여 미술 교육 및 연구의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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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Olivet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OTCS)는 겨울 학기에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이 학업 목표에 맞는 수업 일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강좌 중 하나는 로마서 1부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크리스티 트란 박사의 로마서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습니다. 지난 주 강의에서는 트란 박사가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개인적인 만남을 묵상하기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여행을 떴습니다. 학생들은 선택된 백성만이 아니라 박해자들과 적들에게도 나타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MDiv 학생인 Liting Miao는 자신의 감정을 공유했습니다. “오늘의 강의를 듣고 마음이 사랑과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박해할 때에도 예수님은 그를 지켜보셨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영원히 깊고 완벽하다고 느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으로 변화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용서하고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라고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로마서 1부는 학생들에게 성서의 중요한 교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이 강좌는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를 다루며, 2부에서는 9장부터 16장까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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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MBA 학생들은 기업가 정신에 대해 토론합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에 집중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Olivet Business School의 MBA 학생들은 전례 없는 학술 세션에서 계속해서 온라인 원격 학습에 참여하며 기업가 정신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리버사이드,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뉴욕 맨해튼 캠퍼스의 학생들이 Sebastian Keita 교수가 이끄는 기업가 정신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디자인하고 시작하며 운영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며, 이론보다는 아이디어와 비전에 주목합니다. 학생들은 기업가 정신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계산된 위험 감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룹 토론과 교수와의 개별 상담을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도전하고 배움에 대한 참여를 지속적으로 촉진합니다.

한 MBA 학생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많은 유명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연구하고, 창업에 대한 욕망과 비전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비전과 꿈은 중요하지만,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와 기회를 찾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창업가는 기회를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며, 투자하기 전에 위험을 신중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Olivet Business School의 MBA 프로그램은 기업가 정신을 키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을 제공하며, 온라인 강의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와 배움을 지속적으로 촉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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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OTCS 교수진은 복음주의 신학 학회 가상 컨퍼런스에 참여합니다.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신학대학 및 신학교(OTCS) 교수진은 복음주의 신학 협회(ETS)를 포함하여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의 일환으로 일련의 주요 회의에 사실상 참여했습니다.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ETS)의 주제 중에는 교회사: 종교의 자유, 무슬림 변증론이 있었습니다.

“교회사에 관한 이 라이브 세션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주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고, 무슬림과 세계에 복음을 더 잘 전파하기 위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녹화 세션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라고 Dover 캠퍼스의 강사인 Jasper Rebrova가 말했습니다.

OTCS 교수진은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AAR(American Academy of Religion), 중국 교육 자원 및 추천(ERRChina)에서 주최하는 회의와 같은 다른 가상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거의 8,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국종교학회(AAR)는 종교 분야의 교사, 학자 및 기타 전문가에게 봉사하는 데 전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직입니다. OTCS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교수진이 가상회의에 참여해 ’20세기 스코틀랜드 개혁신학’, ‘미국 개혁신학사에서 ‘ecclesia 개혁신학, semper 개혁신학’의 오용’, ‘칼빈 신학의 왕국 개념에 대한 칼 바르트의 재해석.’

목회상담학과 에스더 정 박사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신학적 견해와 공동체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교육 자원 및 소개 – 중국(ERRChina) 가상 컨퍼런스에서 교수진은 중국 퍼즐에서 유교 및 기독교 대화의 역할과 같은 세션에 참여했습니다.

“발표자는 공자사상에 대한 분별력과 중국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발표를 통해 선교사들이 순수한 복음을 깊이 가르치면 중국 사람들도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제게 울려 퍼졌습니다. 중국은 세계를 위한 비옥한 모판이 될 수 있는 큰 잠재력이 있습니다.” 임무”라고 Dr. Linda Lee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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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D.Min. 프로그램의 사역 트랙은 더욱 성공적인 구두변론을 축하합니다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Zinzendorf 박사과정(ZSDS)의 10명 이상의 목회학 박사(D.Min.) 후보자들이 최근 D.Min에 대한 구두 변론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이러한 성취를 축하하기 위해, 사역 트랙과 멘토 교수진은 후보자들의 노력과 성공을 응원합니다.

멘토 교수들의 참석 아래, 박사과정 위원회는 후보자들의 구두 변론을 심층적으로 검토했고, 논문 완성을 위한 질문과 제안을 제공했습니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독특한 사역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트랙의 Jana Rebrova는 선교사의 관점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의 복음 주의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Aria Reppert는 교회 예배 및 음악 트랙에서, 예배 지도자와 예배 팀을 위한 영적 훈련에 관한 연구를 다루었습니다. 또한 Business as Mission 트랙의 Yanping Zhang는 선교사들을 위한 천막 제작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트랙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달에도 풍부한 품질의 논문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ZSDS 사역 프로그램 박사인 Tom Cowley 박사가 말했습니다.

ZSDS는 D.Min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후보자들은 자신의 논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검토할 기회를 갖습니다. 구술 방어 및 졸업 요건을 모두 통과한 후보자들은 올해 6월 졸업식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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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샌프란시스코 주빌리 음대 분기별 연주회 개최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샌프란시스코 주빌리 음악대학(Jubilee College of Music San Francisco)은 크리스마스 방학 직전에 분기별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13명의 학생과 강사인 쿠보 앨리스(Alice Kubo)가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 등 유명 작곡가의 피아노 곡을 연주했습니다.

주목할만한 작품으로는 WA Mozart의 Alleluia;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날레; 안토니오 비발디의 가을; 천사들의 하모니 Op.100, No 21;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폴카 Op.29, No 14, 제임스 호너의 내 마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음대 학생들의 공연에는 피아노와 드럼 듀엣이 포함되었습니다. 앨리스 쿠보(Alice Kubo) 강사는 Sonata In E-Flat Major, Op. 81a를 연주하여 독주회에 기여했습니다. 청중은 음악의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며 리드미컬한 대조를 다양하게 즐겼습니다. 저녁은 JCM의 가을 분기 피아노 코스의 인상적인 쇼케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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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학생들은 다가오는 졸업식 준비를 위해 디자인 센터와 협력합니다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리버사이드 본교에서 열릴 예정인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졸업식을 위해 OSAD(Olivet School of Art and Design) 교수진과 학생들이 대학 디자인 센터와 손을 잡고 행사를 위한 무대, 장소 장식 및 기념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례 행사는 미국 전역과 전 세계 Olivet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최상의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여 그들을 환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창의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제품이 기능적이면서도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실용적인 관점을 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러워야 합니다.”라고 대학 디자인 센터 소장인 Rodem Hwang 박사가 설명했습니다.

무대 배너, 가로등 배너, 꽃 꽂이, 초대장 및 기념품은 이번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이벤트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물류 측면에서도 세심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대학 디자인 센터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프로젝트 관리 및 디자인 품질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이번 행사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신실함을 증거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며 계속해서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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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소집식으로 2023-2024학년도 시작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

9월 22일,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예배당은 소집식을 통해 2023-2024년 새 학년도의 시작과 함께 활기를 띠었습니다.

OTCS 교수진인 Kathy Tran 박사가 소집식을 주재했습니다. 그녀는 모인 청중들에게 따뜻한 환영 인사를 전하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고, 선율적인 오프닝 노래로 시작된 행사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음악이 잠잠해진 후, 캠퍼스의 저명한 교수진이 모여 참석자들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순간에서 OIT(Olivet Institute of Technology)의 교수인 Thomas Kong 교수가 청중을 인도하여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학문과 지도력에서 높이 평가받는 도널드 틴더(Donald Tinder) 박사와 목회학박사 프로그램 디렉터인 톰 카울리(Tom Cowley) 박사가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 참석자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틴더 박사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영감을 받아,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새 학년을 축복했습니다. Cowley 박사는 누가복음 5:37-39를 인용하여 “새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에 대한 은유적인 언어로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격려했습니다.

캠퍼스 디렉터인 조셉 리 박사는 로마서 11장 29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집 연설을 하였습니다. “OU에서의 공부는 여러분 모두에게 큰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각자를 위해 특별한 부르심과 독특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이것은 여러분이 삶을 통해 성취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소집식은 폐회 노래로 마무리되었고, Jubilee College of Music 학장인 Merril Smoak 박사의 축사로 이어졌습니다. 이 날은 즐거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단체 사진 촬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올리벳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교수진과 학생들은 이 우아하고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하고 하나님에게 감사와 헌신을 바쳤습니다. 앞으로의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학년도를 기대하며 함께 축복의 순간을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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