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의 전신갑주 – 장재형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늘 강조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 자체이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생명의 근원이기에, 진리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전신갑주를 준비하는 첫걸음이라 역설한다. 에베소서 6장 후반부에 “전신갑주”가 소개되는데, 그중 첫 번째인 “진리의 띠”를 언급하면서 그는 “진리는예수 그리스도 그분이기에,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흔들리지 않을 가장 근본적인 토대”라고 설명한다. 다른 무장을 아무리 잘해도 진리를 놓치면 중심이 무너져 버리므로, 진리 없이는 우리의 신앙이 온전히 선 자리에 있을 수없음을 시사한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며, 여기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신앙의 근간을 세우는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에베소서가 언급하는 “전신갑주”는 겉모습만을 장식하는 무장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단단히 지키기 위한 영적 무장이다. 그는 “진리의 띠”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정의하며, “항상 진리를 몸에 지니고 있는 상태가 곧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출발”이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묶는 열쇠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곧 성경 전체가 말하는 구원의 계획을 중시한다. 이는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완성된 복음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묵상하고 소화해, 우리의 삶에 체화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소가 위가 여러 개 있어 되새김질하듯이, 말씀도 계속반복해 묵상해야 진리가 우리 삶에 스며들고, 실제로 행동에까지 이어진다”는 비유 역시 그가 자주 들려주는 말이다.

장재형 목사는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일회성으로 흘려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진리를 끊임없이받아들이고 되새김질하여,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신앙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부지런히 말씀을 소화할 때, 우리의 사고와 언행이 서서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반영하게 되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또한 진리를 붙드는 이가 사탄의 유혹 앞에서도 견고하다고 말한다. 사탄의 공격 방식은 결국 거짓과 의심을부추겨,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느냐?”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통해 흔들어 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설명이다. 예수님조차 광야에서 3대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문구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로 맞서 싸우신 것처럼, 우리 역시 ‘기록된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장재형 목사는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진리를 붙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세 가지 정도를 제시한다. 첫째, 말씀을 늘 곁에 두고 깊이묵상하며, 그 말씀이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듣고 배운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칠 때, 비로소 진리가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리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는복음의 힘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을 자주 예화로 든다. “복음 안에 담긴 진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었으며, 그 진리가 결국 교회를 살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복음이 갖는 진리의 절대성은 흐릿하게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 위에 교회가 서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진리의 핵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이기둥을 흔들 수 없다.

결국 에베소서 6장에 나온 전신갑주 중 첫 번째 무장인 “진리의 띠”는 영적 전투의 기초다. 군인이 벨트를 하지 않으면 무장 전체가 흐트러지듯, 진리를 놓치면 다른 모든 것도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장재형 목사는 “복음의 진리를 확고히 붙들고 있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올바른 열정을 품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
장재형 목사는 “의의 흉배”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해설한다. 흉배가 심장을 보호하듯, 우리의 내면과 마음을 굳세게 지키는 힘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간절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다스림을 갈망하는 이들은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중심을 쉽게 잃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적 의미와 동시에 현재적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미래적 하나님 나라’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이미 임해 있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로 들며, 과거와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됨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미와 아직 사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실현은 아직 미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 놓인 우리는 소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현재의 삶에서도 그 통치를 경험하기 위해 분투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소망이 사탄의 주된공격 목표가 된다고 강조한다. 즉, ‘내일이 없고, 너희가 가는 길은 허망하며, 하나님의 계획 따위는 없다’는 의심을 심어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수법이다.

그는 바로 이 점에서 “구원의 투구”가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머리가 상징하는 ‘생각’이 하나님 나라에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사탄은 얼마든지 절망과 낙심의 불화살로 관통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예로 들어, 그들이 광야에서 자꾸만 애굽을 그리워하고 불신과 불평에 사로잡히자 길이 험난해졌음을 지적한다. 반대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을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와 인도가 이어졌다.

장재형 목사는 소망을 붙드는 실천 방법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에 대한 약속을 성경에서 계속 상고하고 상기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다스림이 실제로 임하는 것’을 체득해야 한다. 셋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선배들의 간증과역사 속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인하며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소망은 공고해지며, 사탄이아무리 ‘네 미래는 없다’고 부추겨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그는 “평안의 신발”이 곧 복음 전파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다주는 힘이며, 이를 위해 평화롭게 전하는 복음의 사역은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온유함, 겸손,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복음 전파야말로, 사탄이 가장 꺼려하는 일이라고역설한다. 결국 복음은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이며, 이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들을 사탄은쉽사리 무너뜨리지 못한다.

나아가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구절을 빗대어,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를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과 비교하며, 아무리 광야가 길고 험해도, 결국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현대의 교회가 이 역사를 기억한다면, 지금 아무리 사회가 어둡게 보여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믿음의 방패와 시험의 문제
에베소서 6장 16절이 말하는 “믿음의 방패”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온갖 ‘불화살’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해석한다. 사탄이 쏘아 대는 불화살은 여러 형태를 띠는데, 의심, 유혹, 정체성 혼란, 절망, 인간관계 갈등 등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그에게 따르면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라기보다, 의심과 거짓에 쉽게 흔들리는 상태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정말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 열매를 못 먹게 하셨을까?” 하는 의심으로 미끄러졌을 때, 결국은죄를 범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도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너를 진짜 사랑하실까?’ ‘정말 네가하나님의 자녀일까?’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려 한다.

이런 의심에 맞서는 무기는 무엇일까? 장재형 목사는 첫째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의 확실성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마다 “기록되었으되”로 대적하셨듯이,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견고한 신뢰가 의심과 거짓을 물리칠 핵심 무기라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다. 예수님이받으셨던 시험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으로 시작되었듯이, 사탄은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려 할 때 가장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실하면, 사탄은 쉽사리 그 틈을 비집고들어오지 못한다.

장재형 목사는 시험이 오히려 믿음이 자라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삶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유혹이나어려움은, 우리가 더 깊은 기도와 말씀이 필요함을 깨닫게 만든다. 그가 예시로 드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다.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믿음을 굳게 품고 있었기에, 골리앗이라는 거대 적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물맷돌 하나로 승리했다. 사탄은 우리의 시선을 골리앗의 거대함에만 고정시키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바라보기에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자신이 걸어온 신앙 여정에서, 처음에는 작은 일에도 불안했지만, 점차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체험이 쌓이자, 이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문제도 더는 크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믿음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과 격려를 통해 자라난다는 사실을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시험의 시기일수록 공동체가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 불화살을 감당하기가 더 어렵기때문이다. 서로 믿음을 확인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상호 확인하며 기도해 줄 때, 믿음의 방패가 더욱 견고해진다. 믿음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후퇴가 아니라 적극적인 전진도 가능하게 된다. 전쟁에서 방패는단지 막기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열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적진으로 들어가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으면 사탄의 화살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을 위한 주도적 행보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성령의 검과 전신갑주에 관한 실천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무장 중 하나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장재형 목사는 특별히강조한다. 앞선 무장들이 주로 방어적 역할을 한다면, 성령의 검은 영적 전쟁에서 적을 능동적으로 무너뜨리는 공격 무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 아래 상황에 맞게 선포되고 적용될 때에야 비로소 예리하게 작동한다.

그는 이 성령의 검을 제대로 휘두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읽다 보면, 성령께서 때마다 특정 구절을 떠올리게 하시거나 우리의 마음을 찌르시는데, 그때 곧바로 순종하며 말씀을 실행할 때 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둘째,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잘못 적용하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상처 주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근거로 말씀을적용하면, 이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회개로 이끄는 ‘생명의 칼’이 된다. 셋째, 기도와 훈련을 통해 말씀을 익혀야 한다. 군인이 아무리 좋은 검을 들고 있어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듯이, 우리도 말씀을 연구하고 공동체에서나누며 기도로 준비할 때, 검의 효과가 더 커진다.

장재형 목사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라는 구절이 성령의 검을 설명한다고 언급한다. 이 검은 우리 안을 먼저 찌르며, 회개와 정결을 이루게 한다. 자기가 다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타인을 무조건 ‘말씀’이라는 명분으로 휘두르면,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검이 아니라 ‘폭력적인 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먼저 자기 성찰과 회개를 거쳐야만 제대로 된 빛을 발한다.

결국 전신갑주는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맞물려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말한다.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균형이 깨진다. 예컨대, 믿음의 방패가 단단해도 구원의 투구가 없어 소망을 잃으면, 머리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진리를 알지만 의를 향한 갈망이 식어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영적 싸움에서 쉽사리 무기력해진다.

그는 이 전신갑주를 실제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 세 가지 영적 훈련을 제안한다. 첫째, 매일 정해진 시간을 기도에할애하라는 것이다. 그 시간에 찬양과 말씀 묵상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에 순종하는 노력을 하라. 둘째, 성경을 ‘암기’ 차원을 넘어 실천 적용으로 연결지으라는 것이다. 하루 한 구절씩이라도 상황에 맞춰 상기하고실행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공동체 안에서 간증과 피드백을 나누라는 것이다. “오늘 나는 어떤 유혹을 맞닥뜨렸고 어떻게 말씀으로 이겨냈는가?”를 서로 점검해 줌으로써 전신갑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을 전신갑주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믿음의 방패(믿음), 구원의 투구(소망), 의의 흉배와 복음 전파의 열심(사랑)이 균형 있게 돌아갈 때, 사탄의 거짓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병자를 고치고, 죄인을 영접하시며, 십자가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하셨을 때, 이는 그대로 성령의 검이 되어 사탄을 물리치셨다고 그는 말한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리와 사랑, 그리고 성령의 역사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와 함께 장재형 목사는 “전신갑주”가 화려한 겉치장이나 무장에 국한되지 않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영적 전쟁은 현실 세계의 시끄러운 투쟁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유혹과 거짓, 절망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면하듯, 깨어있는 기도가 이전신갑주를 계속 유효하게 만든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더 선명히 느끼고, 그때그때 말씀을 적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시험에도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에 대해 장재형 목사가 제시하는 바는, 결국 이 영적 전쟁을 공동체가 함께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듯, 서로를 위한 중보 기도와 격려를 통해, 개인을 넘어 교회 전체가 영적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메시지의 결론부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사는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본받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온갖 시험과 대적의 공격,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겪으셨지만, 진리와 사랑으로 승리하시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다. 우리가 그 길에 동참할 때, 세상은 알아주지 않고 비웃을지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장되며 수많은 영혼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 마지막에서 두기고를 언급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고 덧붙인다. “두기고와 같은 동역자가 없었다면, 바울의 높은 정신과 복음의 진수가 교회에 잘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것이다. 교회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이기에, 복음을 서로 연결해 주는 ‘두기고’들이 곳곳에 세워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리해 보면, 장재형 목사가 에베소서 6장을 통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진리의 중심을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소망하며,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 내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는이룰 수 없으므로, 교회 안에서 서로 세워 주며 동역해야 한다. 나아가 그는 “현실에 휘둘리지 말고 영원을 바라보며, 그 영원한 소망을 오늘의 삶에 적용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아무리 답답해 보여도, 영적 눈을들어 보면 이미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위해 “더 깨어 준비하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교회가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성령 안에서 거룩과 사랑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게 될 때, 영적전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승리란,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성한 열매로 나타난다.

이어서 그는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이 자신의 사역의 뿌리가 되고있음을 다시금 언급한다. 어떤 인간적인 공로나 자격이 아닌,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고, 그 은혜를 붙드는통로가 믿음이며, 그 믿음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흔들리지 않을 때,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가보장된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6장에 내포된 비전과 현재 시대의 교회를 잇는다.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 경건 생활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가 연합해 서로 격려하며 전진한다는 뜻이다. “서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말씀을 붙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 비록 가시밭길 같아도 그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의 칭찬을 듣게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결국 에베소서 6장의 요지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어떤 거짓과 절망도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꺾였고, 전신갑주를 두른 하나님의 백성은 이 영적 전투에서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확신이 있으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장재형 목사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교회가 있다면 소망은 살아 있다.” 우리가 전신갑주의 각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서로 사랑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고,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제시한‘구원의 드라마’를 우리의 시대에 재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는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리를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동안 헌신과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교회사와 성경의 역사에서 보듯, 그 희생이 결국은 영광으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싸우되, 사랑의 방식으로싸우고, 진리 안에서 겸손하게 나아가라”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이렇듯 에베소서 6장을 관통하는 전신갑주의 정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복음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든다. 진리에 굳게 서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 내고, 성령의 검을 들고 나아가는 교회는어떤 어둠도 결국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우리의 일상과 교회 역사, 그리고 세상에서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거듭 확신한다.

장재형 목사는 끝으로 이 모든 것이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재차 이야기한다. 교만하기 시작하거나 스스로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전신갑주는 어느새 풀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매일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그 어떤 시험에도 휘둘리지 않을 담대함을 얻게 된다.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신앙 공동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영적 전쟁터임은 분명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승리는 확정된 전쟁이다. 전신갑주를 온전히 갖춘 우리는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과 소망, 그리고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이 있는 한, 교회는 생명력 있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말로 설교를 마무리하곤 한다. 지금도 우리는 이 영적 전투 한복판을 살아가지만, 함께 전진하는 교회와 더불어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걸음을 계속 옮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의 중심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