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감사의 본질
감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삶 속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5-17절에서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그는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말하며, 곧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선언한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고 부탁한다.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는, 감사의 출발점이 우리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강, 곧 하나님과 화목함으로부터 얻은 영적인 평안이라는 점이다.
믿음 안에서 갖게 되는 이 평강은 세상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이나 일시적인 위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는 말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주신 평강을 우리가 마음의 중심 자리에 두고 그분의 다스리심에 자신을 내어 맡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이 평강은, 우리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장재형목사는 수많은 설교와 강론에서 “감사는 인간의 한계와 상황을 초월하는 힘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열매”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은 단순히 미래에 대해 안도하는 수준을 넘어, 현재 우리가 처한 모든 삶의 자리에 평안을 부어준다. 이것은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며, 우리의 의나 공로나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이기에,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영적인 평안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기 전,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였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담이 쌓이고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은혜와 평강’이다. 바울 사도의 서신서의 인사말을 살펴보면, 대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라는 식의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이 우리 믿음 생활의 핵심 기둥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평안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가르침도,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기반으로 한 감사의 자세를 설명하는 것이다. 감사는 단순히 “이루어진 일이 있으니 감사하다”라는 식의 도덕적 습관이나 예의 범절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감사를 모르는 자는 결국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영적 맹인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말해왔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차원에서의 평안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역사하는 영적인 평강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상황에 따라 쉽게 깨어질 수 있지만, 후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늘 확인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을 지금 정말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고 있는가?”이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감사는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는 길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를 화목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안은 개인적으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함께 공유해야 할 공동체적 축복이기 때문이다. 한 몸의 모든 지체가 하나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같은 평강을 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 간에 다툼이나 분쟁이 아닌, 이해와 용납, 그리고 사랑 속에서 ‘감사함으로’ 하나 될 수 있다.
이러한 평강은 스스로 힘써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생수가 끊긴 샘과 같이 메마르게 된다.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이 아닌 내 상황과 능력, 혹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 안도감에 기초할 때, 우리는 감사의 근본 동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바울이 골로새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가 여러 차례 설파했듯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지표 중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자라면, 그 마음속에는 반드시 감사의 마음이 깃들게 된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더해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의 사실’을 깨닫는 데서 자연스레 솟아나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수록, 우리 안에 있는 감사는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그리고 이 감사가 깊어질수록,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걱정, 불안이 아닌, 오히려 평강과 기쁨이 된다.
실제로, 장재형목사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육 기관과 봉사 단체를 설립할 때, 가장 앞세운 정신 중 하나는‘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는 곧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길을 여시며 공급해주시는 모든 것은 한량없는 은혜다. 그러니 먼저 감사하고, 그 감사를 주님께 찬양으로 돌리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리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을 살피며, 복음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역의 출발도 바로 ‘감사’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온전한 사역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는 영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한 대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될 수 있다. 말과 혀로만 감사한다고 고백하고서는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평강과 은혜를 저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평강을 마음에 품은 자는 자연스럽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이 감사는 곧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 삶의 예배가 된다.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감사를 드릴 동력을 잃게 된다. 그렇기에 바울은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한다. 말씀을 잊지 않고 붙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항상 기억하고 삶 속에 적용하며, 더 깊은 감사의 뿌리를 내리는 비결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말씀 묵상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리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리스도의 평강 대신 세상의 염려가 마음을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정리하자면, 감사의 본질은 외적인 성취나 형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영적인 평강을 얻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감사하는 자라는 정체성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특징짓는 근본 요소이다. 장재형목사가 줄곧 가르쳐온 핵심은, “감사하라”라는 명령은 결코 우리의 무언가를 착취하려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부어주신 은혜의 풍성함을 바라보라는 초청이며, 그 은혜를 누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권면이라는 점이다.
이런 영적 질서를 깨닫고,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감사의 문화를 꽃피우는 것,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소주제에서 강조하고 싶은 요점이다. 우리는 ‘감사의 본질’을 바로 이해함으로써, 감사가 신앙생활의 외곽 장식이 아닌 중심 기둥이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봐야 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다. 오직 그분의 평강이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는 비로소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2. 감사로 드리는 삶
앞서 우리는 감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적인 평강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제 골로새서 3장16-17절의 말씀을 통해, 범사에 감사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16절에서“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17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말과 행동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감사가 드러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 중 하나가 찬양이다. 시편 기자들은 늘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찬송 자체를 ‘희생 제물’에 비유한 적도 있다(시편 50편 등). 히브리서 13장 1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되었듯, 찬송은 예배자가 드리는 가장 존귀하고 순수한 제사의 한 형태다. 장재형목사는 여러 번의 설교에서,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제사는 찬양과 감사”라고 말하며, 물질적인 희생 이상의 고귀한 예배가 곧 찬양으로 드려지는 감사임을 역설했다. 이는 외적인 형식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입술, 그리고 영이 함께 드리는 영적인 예배다.
특히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통해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서로 떡을 떼고 식탁 교제를 나누면서 시편과 찬송을 함께 불렀다고 한다(사도행전 2장 참조). 이와 같은 공동체적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영광의 표현이었을 뿐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며 더 큰 은혜로 나아가게 하는 영적 장치이기도 했다. 감사로 가득 찬 찬양이 공동체 안에 울려 퍼질 때, 성도들 간의 유대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이 더 강건해진다.
이처럼 찬양이 우리의 감사 표현으로써 중요하지만, 바울은 찬양에 그치지 말고 ‘말과 일’ 모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의 말이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이 되게 하라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하는 모든 일 역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찬송을 부를 때는 감사로 충만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여러 근심과 문제로 인해 쉽게 불평하거나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부름받은 우리라면,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가리켜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자주 표현했다. 예배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는 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행동이 주님의 성품을 반영하며, 우리의 결정과 선택이 그분의 의를 이루는 통로가 될 때, 우리의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갈 때, 감사는 더 이상 특별한 날에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숨쉬는 모든 순간에서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된다.
또한, 감사로 드리는 삶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울은 말과 일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하나님께 감사가 드려진다고 했다. 즉, 사역의 현장이나 직장, 가정, 학교, 사회의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이웃을 섬길 때에도, 복음을 전할 때에도, 혹은 누군가를 가르칠 때에도, 철저히 주님의 뜻과 사랑을 따라가고자 애쓰면서 그것을 감당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특히 장재형목사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교회와 교육 단체, 봉사 기관 등을 세울 때 강조했던 것은, 말뿐인 찬양과 감사가 아니라, 실제적인 헌신과 나눔으로 이어지는 ‘삶으로 드리는 감사’였다. 예컨대,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 학교를 세우고 먹을 것과 교육을 제공하는 일, 인권이 유린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현실적 필요도 채워주는 일, 또 영혼이 갈급한 이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등은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골로새서 3장 17절의 말씀을 살아내는 모습이다.
감사는 이렇게 우리의 말과 행동 전부를 아우르는 태도이기에, 진실된 감사는 결코 입술의 고백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찬송과 시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소외된 자들을 섬기며 사랑의 열매를 맺을 때,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감사가 완성된다. 바울이 말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라는 구절에는, 우리의 일상이 작은 영역 하나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크고 특별한 일에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습관과 일상에서부터 주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 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한 요한일서 3장 18절의 말씀도 여기에 정확히 부합한다. 또한 야고보서2장 17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경고할 때, 그 중심에도 같은 맥락이 놓여 있다. 믿음은 결국 감사와 찬양으로 표현되고, 그것은 곧 구체적인 실천과 나눔, 그리고 섬김으로 이어져야 한다. 말과 일, 곧 우리의 언어생활과 행동양식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감사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장재형목사는 “감사는 우리가 받은 바 은혜를 기억하는 일에서 시작하며, 그 기억이 행동으로 꽃피울 때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를 공동체 안으로 불러주신 은혜와 다양한 형태의 복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간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사한 마음을 찬양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기쁘게 사용하는 것도 감사의 실천이다.
또한, 장재형목사는 수많은 집회와 사역 현장에서, 우리의 언어습관을 주목하라고 당부했다. 감사가 충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다르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환경에서 쉽게 듣는 말은 불평과 원망, 혹은 험담과 좌절 섞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자는 대화를 할 때에도,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해석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는다”라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결코 현실을 부정하거나 힘든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을 붙들며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태도다. 이것이 말에서 드러나는 ‘감사의 예배’이며, 다른 이들에게도 믿음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영적 영향력이 된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행동 역시 감사로 변화된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쉽게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 유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려 하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주위를 살피고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 힘쓴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는 길이자, 결국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하는 길이다. 바울이 말한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이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설령 누가 보지 않는 그 자리에 있더라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역사도 사실 이러한 ‘삶으로 드리는 감사’에서 비롯되었다. 1620년에 필그림 파더스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혹독한 겨울과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를 세우고, 신앙 교육을 위한 바이블 스쿨을 세운 뒤,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처음 해의 농사는 흉작이었고, 많은 이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온갖 고난과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끄시고 구원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400여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감사절의 정신이다.
장재형목사는 미국 사회가 “Thank you”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 주목하며, 이 문화를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이 깃든 문화’라고 설명한다. 원래 ‘감사’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이들은 매사에 감사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상대방에게 “고마워요”라는 말을 전할 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배후에 계시고 사람들을 통해 선을 행하셨음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셈이다. 따라서 감사의 문화가 뿌리내리려면,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자리 잡고,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기념하는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전 세계가 동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본질적 의미,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정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한 모범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가 다를지라도,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되새기며, 그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제안하는 ‘C12, G20’ 사역도 마찬가지다. 이는 곧 교회와 교육, 봉사, 그리고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비전이다. 그러한 비전을 세우고 이뤄가는 과정 자체가, 말과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의 예가 된다.
바울이 말하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한 도전이다. 교회 안에서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과 사회에서, 그리고 세상의 어디를 가든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와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볼 것이고, 우리 안의 소망과 평강을 궁금해하며 결국 복음의 길로 나오게 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은 곧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하나됨을 이루게 한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는 골로새서 3장 15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우리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한 몸 된 지체들이 서로 감사하는 태도를 가질 때, 그 공동체 안에서는 남 탓이나 비난보다 서로 권면하고 세워주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바울은 그런 모습을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로 그려냈다. 오늘날 교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으나, 만약 그리스도의 평강이 공동체 전체를 주장하게 하고, 각 지체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데 힘쓴다면, 자연히 갈등은 줄어들고 서로를 섬기는 사랑이 충만해질 것이다.
감사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도 연결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임을 기대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불평 대신 감사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 옛날 필그림 파더스가 낯선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이 한 해 동안 겪은 시련이 결코 작지 않았음에도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가리켜 “감사는 믿음의 씨앗을 심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의 고백 위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주시고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아우르는 신앙적 태도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열쇠이기도 하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통해 밝히는 메시지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삶의 국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은혜와 평강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사는 우리의 말과 행동 전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이렇게 감사로 살아가는 이들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불평이 가득한 시대에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마치 어둠 속의 빛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단순히 “어려운 한 해였지만 무사히 지나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것도 감사의 제목이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영원한 평강을 얻게 하신 것”에 먼저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가 우리의 말과 행동, 예배와 찬양, 그리고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노래하는 것, 곧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매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감사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늘 말하곤 했다. “감사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지만,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이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크나큰 예배가 된다. 감사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공동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부흥과 각성이 감사와 찬양으로 충만한 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필그림 파더스가 고난 중에도 예배하고 감사했던 그 역사적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감사의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라는 부르심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고, 그 말씀을 풍성히 붙들며, 찬양과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한순간의 의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 더 깊은 순종과 찬양, 그리고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되길 소망한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리는 신앙인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골로새서 3장 15-17절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메시지이며, 장재형목사가 세계를 누비며 강조해 온 복음적 삶의 핵심이기도 하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또 개인적인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결코 단순하거나 쉬운 명령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부어져 있음을 안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평강에 힘입어, 우리의 말과 행동, 즉 ‘말에나 일에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혼란 가운데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 해, 또 그다음 해에도 하나님께서 펼쳐주실 더 큰 비전을 기대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감사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와 찬양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열방을 향해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장재형목사가 말한 대로, 우리가 받은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정의와 사랑, 평화가 이 땅에 구현되도록 힘을 다하자. 말로만 하는 찬양이 아니라, 온 삶을 드리는 참된 예배자로 살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여 역사하실 것이며, 우리는 더욱 풍성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힘써 걸어갈 때, 분명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한 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열매를 누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며, 하나님 아버지께 쉼 없이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리자. 아멘.